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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Mar 23. 2024

버드와이저와 이상한 과외선생

연수비용을 충당하고 가정의 소중함을 알게 한 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닮아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作


소설의 첫 문장 TOP10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다. 행복한 가정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저 문구처럼 확실히 닮아있다. 엄격하지만 따뜻한 부모님, 우애 있는 형제자매, 예의 있지만 자유롭게 소통하는 가정 분위기... 그런데 불행한 가정은 나름의 이유로 불행한가?


표면적으로야 다르지만 그 역시 비슷한 이유로 불행하다는 걸 깨달았다. 과외를 하면서 방문한 가정들이 그랬다.



대학에 가서 돈을 버는 일터로 과외만 한 게 없었다. 시간 투자 대비 보수가 괜찮았으니 열심히 일했다. 남의 가정사에 딱히 관심은 없었지만, 자주 드나들다 보면 자연스레 집안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루는 중학생 과외 요청을 받고 저녁 시간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집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과외를 받아야 할 아들이 방에서 나오며 퉁퉁거렸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억지로 공부를 해야 한다니 뭐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진정한 질풍노도가 몰아치고 있던 쪽은 아버지였다. 사춘기 아들의 불만스러운 몸짓에 그만 욱해버렸다.


"이 눔의 자식이! 으아아!"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아들에게 달려들었다. 느닷없는 광경에 깜짝 놀라 '어... 어...'하고 있는데, 이번엔 그 집 엄마가 도움을 청했다. "그러고 있지말고 이 이 좀 말려봐요! 좀!" 아버지에게 멱살 잡힌 아들, 그 둘을 떼어놓으려는 엄마, (여기까지는 자연스러운 데) 그 사이에 낀 과외 선생? 고래 이빨 사이에 낀 치간 칫솔처럼 엉뚱한 광경이 펼쳐졌다.


"아버님! 어허! 진정하시고, 손 놓으세요! 안 돼요!"


결국 과외가 취소된 건 둘째 치고, 부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단 사실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이후로도 몇 몇 경험을 통해, 이런 가정은 대개, 부모로서의 책무를 다른 사람의 시간으로 대체하려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애가 버릇이 없으니 선생님이 좀...'이라든가, '애가 과외랑 학원을 계속 다니는데도 성적이 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거나. 자녀와 부모 사이에 당연히 있어야 할 커뮤니케이션을 남에게 의뢰해버리는 경우다. 그래서 한 번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학생이 일주일에 10개 넘게 과외를 하는데, 이런 식이면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욕이 생기지 않을 거예요. 저를 빼도 좋으니 과외를 줄이시고 학생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기회에 아이 생각은 어떤지 대화도 좀 해보시면..."


그 말에 상황은 이상하게 번졌다. 노란 식탁 조명 아래서 대화를 나누던 학생 아버지는 <타짜> 곽철용이 고니를 보듯 어머니를 쏘아보며 말했다. "거봐, 좀 작작 시키라니까!" 그 눈빛을 받아 그 집 어머니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 저, 제 말씀은... 그게 아니고..."


결국 의도치 않게 다른 선생님들이 일자리를 잃고 나만 남아서 학생을 가르치는, 이상한 결론으로 마무리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당시 과외 선생님 및 학원 선생님들께 미안합니다. 제 뜻은 그게 아니었고...)


행복하지 않은 가정에 소속된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는 건 수영 초심자가 접영을 하듯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가끔 식당에서 밥도 사주고, 공부하는 척하며 마음속 이야기도 나누곤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세상 살이 따위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고, 누굴 살피기엔 여유가 부족했다.


과외가 끝나면 버드와이저를 한 병 사서 놀이터 그네에 앉아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맥주를 마셨다. 학교 도서관의 불빛은 밝았고, 저곳에서 속 편하게 공부만 하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돈 벌기 참 어렵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과외란 일터와 돈벌이가 대학시절 씁쓸한 기억만 남겼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인생살이에 몇 가지 긍정적으로 삼을만한 것들을 얻었다. 먼저 돈을 모아 해외 연수를 갈 수 있었다. 다른 알바보다 효율이 높았던 탓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을 때에도 쉬는 시간을 쪼개 상담을 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는데 가끔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였다면 좀 더 도움이 될 말을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곤했다.


엇보다 가정을 꾸리게 되면 아이와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지 다짐했다. 과외학원은 아이가 원할 때만 보내야지 생각했다. 그 원칙은 나름 잘 지켜온 듯도 하다.


그런데 욱하며 화를 낸 적은?


어제 아침을 먹으며 중학생이 된 아들과 TV를 봤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을 다룬 다큐를 보던 중이었다. 아들이 어른스럽게 혀를 끌끌차며 말했다.


"아빠, 저렇게 힘든 일을 하고도 돈 적게 버는 분들도 많은데, 사무실에 편하게 앉아서 돈 벌고 얼마나 좋아? 회사 계속 다녀. 맨날 불평만 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지!"


'이 눔의 자식이!' 욱하며 화를 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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