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과 인생의 목표로 삼을만한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일
시폰 소재의 커튼이 펄럭인다.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촉 끝이 닳아버린 만년필로 쓰고 긋는다. 페인트가 하얗게 인 나무창틀 너머 수평선을 바라보다 문득, 코발트빛 하늘을 가로지르는 코끼리의 긴 꼬리.
옥탑 방에 갇힌 채 공부만 하던 고시생이, 시야를 막으며 올라간 빌딩 주인에게 반감을 품는다. 어느 날, 빌딩에서 '컹컹' 짖던 개의 울음소리를 못 견디게 된 주인공은 술김에 담을 넘는다. 높은 빌딩은 그의 유일한 사치였던 풍경을 앗아갔고, 개 짖는 소리는 가늘게 유지되던 평정심을 흐트러뜨렸으니 응징을 하는 건 정당하다. 그렇게 빈 소주병을 움켜쥐고 담을 넘었지만 눈에 들어온 것은 뜻밖의 장면이었다. 늙어 죽어가며 마지막 숨에 괴로워하는 개와 그 개만큼 늙어버린 노인. 둘은 마치 서로의 죽음을 위로하는 듯 부둥켜안은 채 달빛 아래 흐느끼고 있었다. 주인공은 소주병을 떨군 채 방으로 돌아온다. 책들을 거대한 성벽처럼 둥글게 쌓아 올리고 그 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개의 울음소리에 맞춰 긴 울음을 토했다.
1. 소설(가)은/는 때를 잘 만나야 한다. 작품이 훌륭해도 너무 앞서 있어 선택받지 못할 수 있다. 허먼 멜빌이 쓴 <모비 딕>과 그의 작가로서의 능력은 사후 30년 뒤에야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평생 글만 쓰면 살길 바랬던 프란츠 카프카의 경우, 대표적 장편인 <성>이나 <심판> 같은 작품은 사후에야 출간될 수 있었다.
2. 운이 좋아야 한다. 세상사란 게 그렇지만 작가로 데뷔하거나 출간작이 사랑을 받으려면 여러 종류의 운이 스위스 치즈 구멍처럼 겹쳐 일어나야 한다. 당장 서점에 걸린 베스트셀러 소설 중에서 5년 뒤에도 기억될 좋은 작품은 몇 개나 될까?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될지도.
3. 글쓰기 재능뿐 아니라 자신의 취향 중 일부가 여러 사람의 취향과 맞닿은 부분이 있어야 한다. 즉 대중성이란 재능이 필요하다. 찰스 디킨즈나 무라카미 하루키라면 모를까 토마스 만이라든가 오에 겐자부로의 진지함은 더 이상 읽기 힘든 시대가 돼버렸다. 대중적 순문학이란 기묘한 표현에 맞는 작품이 아니라면,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단의 순문학 작품집은 이제 화젯거리도 되지 않는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오직 나만 쓸 수 있다는 것
내가 되고 싶은 소설가는 오직 나만 될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