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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Jul 06. 2024

회사 다니며 책 출간하기

첫 책을 내고 작가가 된 일

책을 쓰게 되면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을 하게 된다. 국내에서 출간한 서적은 국립도서관에서 국가문헌으로 영구보존되는 셈이다. 책을 쓰려고 했던 목적 중 하나도 그 때문이었다. 아이가 철이 들면 책이 절판되었더라도 도서관에 들러 아빠가 쓴 책을 읽을 수 있다. (혹은 사돈댁이 될 우리 아들의 예비 장인 장모가 이 집안은 어떤가 싶어 내 책을 찾아보실 수도 있다...일리가... 과한 상상력이겠지.) 그때가 되면 내가 나긋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겠지란 마음으로 책을 써내려 갔다.


실제로 우리 집에는 어머니의 시집이 있다. 가족끼리만 볼 요량으로 그간 써놓으셨던 시를 책으로 엮어냈다. 책을 읽다 보면 어머니가 두런두런 건네셨던 말들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이 먹어도 겨울이 춥고 미끄럽다고... 계절을 미워하고 싶지 않아. 내리는 눈을 즐기면서 늙고 싶다.'

'오늘은 플라타너스 꽃을 봤어. 그 나무에 꽃이 피는 걸 처음 봤다니 플라타너스에게 미안하더라.'


이런 대화를 나눈 뒤엔 꼭 그 감상을 시로 적어 놓으시곤 하셨다. 그렇게 소박한 마음으로 써내려 간 시를 읽다 보면 어머니 안에 존재했던 사람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분이 든다.


가족 출판으로 펴낸 어머니의 첫 시집. 대학 교가 작사가이기도 했던 시인이셨지만 정작 책은 이 한 권이 전부다.


시들은 내 형제들이 읽고 우리 집안 며느리가 된 아내가 읽고, 지금은 손자인 아들이 읽는다. 한 번도 할머니를 본 적 없는 아들은 마치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은 여느 손자처럼 '할머니가 예전에 작은 아빠만 데리고 치킨 먹으러 갔었잖아. 그래서 얘기하지 말라고 했었는데...'라며 들은 듯 이야기를 한다. 내겐 어머니, 아들에겐 할머니, 부자가 함께 어머니와 할머니의 추억을 공유한다는 건 근사한 일이다.


또 한 번은 아들을 혼낸 적이 있어 마음을 풀어주려 방에 들어갔더니 시집을 읽으며 훌쩍 대고 있었다. '할머니 책을 읽다 보면 아빠한테 미안해.' 할머니가 애지중지 사랑하며 키운 아빠의 마음을 상하게 해선 안된단 깨달음을 얻은 걸까? 아마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할머니 사랑이 시집을 통해 듬뿍 흘러간 것이리라.


아이러니하게도 첫 책은 가장 바쁜 때 쓰였다. 당시 일하던 부서는 사업부서라 업무 압박이 상당했고, 학위 과정을 하느라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금요일과 토요일이면 아이와 아내를 재우고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자전거를 타고 밤거리를 달렸다. 24시 커피점에 도착해서 커피를 마시며 원고를 쓰다 보면 어느새 새벽 5시가 되었고 서서히 밝아지는 파란 필터 낀 골목을 거슬러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책의 첫 장에 어머니를 향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사랑하는 어머니께'란 문구를 넣었다.


결국 첫 책이 나왔고 가족들과 함께 교보문고에 가서 매대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저자 강연을 진행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다. 주변에서도 책을 냈다며 신기해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또 가끔 책을 어떻게 쓸 수 있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책 쓰기의 단계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하자면...


1. 노트북을 산다

- 내 경우엔 책을 쓰기 전에 노트북을 샀다. 아마 셰익스피어라면 첫 원고를 쓰기 전, 딥펜에 달린 공작 깃털을 새로 사서 달거나 잉크를 찍는 펜촉을 새로 사지 않았을까? 톨스토이라면 새 연필을 시장에서 구입했을 것이 분명하다. 펜글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노트북 대신 워터맨 만년필도 좋다. 그러나 노트북이 좋은 이유는 따로 있다. 비싸기 때문이다. 어차피 책을 쓰는 첫 작업의 파이팅과 시작을 알리는 구매라면, 비싼 쪽이 샤넬이다. 그렇다고 샤넬처럼 명품 문장이 나오진 않지만, 책 쓰기에 지쳤을 때 본전 생각이 나면서 다시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다. (너무 자본주의적인가?)


2. 일주일에 글 한편 완성을 목표로 주말에 쓴다.

- 우리는 모두 돈을 버느라, 집안일을 하느라, 또는 잡초를 뽑느라 바쁘다. 주말 농장은 이미 잡초의 세상이...

그렇다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평일 밤 시간 또는 주말 밤 시간 정도가 가능하다. 나는 평일 밤은 몸이 피곤해서 도저히 힘들어 주말 밤을 택했다. 주간 집필 계획을 세울 때도 주말이 편했다. 월요일엔 이번 주말에 쓸 글감을 생각해 본다. 화요일엔 핵심적인 콘셉트를 야채망에 거르듯 남긴다. 수요일과 목요일엔 집필에 필요한 자료 등을 서치하고 연구하는 데 쓴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에 걸쳐 글 한편을 완성하면 끝. 딱 맞는다.


3. 작가가 되는 사람은 누군가를 생각한다.

- 해당 분야에 높은 지식과 경험을 갖춘 분들에게 책을 쓰라고 권하면 이런 반응이다. '내가 무슨... 아직도 잘 모르는 것투성이고 더 훌륭한 분들도 많은 데 뭘, 난 멀었어.' 그런데 책을 내는 사람은 누굴까?를 생각해 보다가 이런 결론을 얻었다. "책을 쓰는 사람은 책을 내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여기서 핵심은 '결심'뿐이다. 지식이나 필력 따위는 두 번째 문제다. 결심이 시작이고 전부다. 지식과 경험, 필력에 앞서 작가는 결심을 사람이고, 책을 내지 않은 사람은 결심을 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뿐이다.


4. 집필 공간을 만들자

- 집필 공간은 의외로 중요하다. 학생들이 자기 방 놔두고 공부한다고 도서관이나 스터디 카페에 가는 이유는 공간이 집중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침대가 놓인 방은 수면과 휴식의 공기가 감돈다. 당연히 눈이 감긴다. 집한켠에서 노트북을 켜거나 자료 조사를 위해 책장이라도 펼치면 이내 아내가 다가와 '관리비가 많이 나왔다'거나, 아들이 '아빠, 컴퓨터에서 소리가 나' 등의 일로 찾는다. 일상의 분위기와 단절된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작업이 가능한 24시간 카페도 좋고, 스터디룸도 좋다. 내 경우엔 최근 베란다 작업실 인테리어를 했다. 글을 쓰고 있으면 아내와 아들이 몰려와서 좁은 베란다에서 북적이고 있지만...


청소를 하고, 조명을 달고, 카펫을 깔고 커튼을 설치했더니 아늑해졌다. 요즘은 여기서 주로 책을 읽는다.


5. 목적이 진심이도록 쓰자

- 첫 책은 아들에 대한 진심, 그리고 함께 아이를 키워가는 엄마 아빠들에게 '괜찮다'는 용기를 주고 싶은 진심을 꾹꾹 담아 썼다. 첫 책을 낸 뒤에 쓴 글도 몇 번인가 출간 제안을 받았는데 신기하게도 진심을 다해 쓴 글들이었다. 진심을 담으면 잘 쓰든 못 쓰든 글에 정성이 담기고 깊이가 생긴다. 글이란 신기해서, '유명해지겠다, 돈을 벌겠다, 쉽게 쓰겠다.' 같은 얇은 마음은 글의 틈새로 쉽게 새어 나와 드러나버린다. 부끄러운 글이란 필력이 딸리거나 문법이 엉성한 글이라기 보단 그런 속셈이 드러난 글이다. 지금 쓰는 <일터야 미안해>라는 글도 진심을 다해 쓰려고 노력 중인데 출판사에 연락이 오려나? (하는 속셈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인생은 과정이다. 그렇다면 행복도 그 과정에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 첫 책을 쓰던 당시, 밤새 쓴 커피를 마시고 새벽 공기를 마시며 집필을 마치고 귀가할 때면 어렴풋한 행복을 느꼈다. 글쓰기의 목적지는 출간이겠지만 내 진심을 확인하며 한 글자 한 글자 타이핑하는 순간, 창조의 신 뮤즈는 작가가 걷는 고된 길에 알 듯 말 듯 행복 가루를 넣은 아스콘 포장도로를 깔아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여 어느 순간 뒤돌아 보면 걸어온 길이 보이고 '행복했구나.'란 느낌이 든다. 회사에서 바쁘고 힘들어게 나뒹굴어도, 결국 나는 창조하는 사람, 글을 쓰는 존재, 첫 책을 향해 나아가는 작가라는 자기 인식이 나를 정결케 한다. 회사 다니며 책을 이유다.  


첫 책을 쓸 당시의 제 사진을 용케도 AI가 찾은 듯 한데, 지금은 살이 좀 붙었습니다. by copi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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