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에 맞는 일을 찾으라는 조언을 듣곤 한다. 고통이 수반되기에 일인 것인데 적성에 맞는다고 덜 괴로울까? 회사를 오래 다닌 입장에선 무슨 도시 괴담 같은 거 아닐까 싶기도 했다. 실제로 나는 게을러 (보이는 편)이라 그런지 적성에 맞는 놀이라면 모를까 적성에 맞는 일을 떠올려 본 적은 없다.
어머니께서 '그렇게 누워 있으면 소 된다!'라고 하셨을 때도 '밥 천천히 앉아서 되새김질하면 되니까 소가 되면 참 편하고 좋겠습니다 어머님.' 했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 보니 불효자의 답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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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학위를 딴 이후 기회가 주어지자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건 적성에 맞을까 싶어 도전해 봤다.
대학 강사를 하려면 회사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귀한 휴가를 써야 하니 제법 번거로운 일이다. 출석이나 성적도 상대평가로 이뤄져 대학 기준에 맞춰줘야 하고 이런저런 학사 행정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개강 이후 학생들은 저마다 다양한 이유로 메일이나 톡을 보내왔다. 일일이 답해주는 것도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강의가 있는 날엔 새벽같이 차를 몰고 가면서 오늘 가르칠 내용을 녹음한 파일을 차 안에서 몇 번이고 들어보고 수정을 해야 했으니 강제로 부지런해진 셈이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 말마따나 직업을 갖는다는 건 새로운 장(field)에 진입하는 일이니 고생이라 생각하긴 그렇다. 새로운 중력장에 진입하기 위해선 마땅히 준비를 갖춰야 한다. 그래서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서점에 들렀다. 대학 교수의 일과 교수법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대학생을 지도하는 일은 교육이 30%, 상담이 70%란 말에 밑줄을 그었다.
따져보면 대학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란 게 과거엔 박사급 연구자들이 제공하는 고급 정보였다면, 유튜브 세상이 된 지금은 학생 상황에 맞춘 상담이 주력 서비스가 되는 쪽이 타당한 말이다.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수업을 진행하고, 쉬는 시간엔 학생 상담을 진행했다. 연구실 없는 대학 강사니 교탁에서 상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처음엔 학생이 적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많아졌고 상담 내용도 구체적으로 이어졌다. 내 삶도 그럭저럭 영위하는 입장에서 영감을 주는 말 따위를 건네는 건 분에 넘친다. 하여 최대한 성의 있게 들어주고, 격려를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대학 졸업이 가까워지면 불안해진다. 분명 열심히 공부하고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한 것 같은 데 서류나 면접에라도 떨어지면 내 기억과 경험, 존재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충격에 빠지고 만다. 나도 패배감에 허우적거릴 때 선배의 격려에 몸을 일으킨 기억이 났다. 하지만 의외로 학생들은 격려를 적게 받는단 생각을 하게 됐다.
"취업상담실에 갔더니 이 스펙으론 가고 싶은 회사는 무리라고 하셔서요. 휴학을 하려고요."
화가 났다. 격려 대신 기를 꺾는 말이라니. 물론 사회에 나와 돈을 벌기 시작하면 관점이 회의적으로 바뀐다. 수많은 준비에도 성공보단 실패가 익숙해진다. 그러니 냉정하게 말해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졸업생이 사회에 발을 내딛고 현실로 걸어 들어간다는 건, 아이가 처음으로 걸음마를 하며 내 발로 지구를 밟고 서는 순간과 닮았다. 현실에서 일을 시작한다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이 아니라 꿈을 향해 나아가는 행위다. 한 인간에겐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다.
"너 어차피 넘어져!"라는 말, "걸어봤자 너보다 더 잘 뛰는 사람 천지인걸!"이란 말을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건넨다면, 그것이야말로 미숙한 어른들의 말이다. 그건 학생들을 성숙해지기도 전에조로하게 만든다. 더 잘 걸을 수 있는 방법, 덜 아프게 넘어지는 방법,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말을 건네야 한다.
요즘 세대에겐 '이렇게 살아야 돼!'란 제약만 있고, 도리어 진심 어린 격려 부족에 시달리는 세대라 짠하다.
그렇게 몇 학기 동안 대학과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졸업생에게 메일이나 전화, 톡이 와서 안부를 묻거나 '선생님 격려 덕에 원하는 직장에 갈 수 있었어요'라거나 '강의 때 해주셨던 말씀을 적어두곤 몇 번씩 문장을 되내곤 했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코를 쓱 훔치며 '아이 참'이라고 얼굴이 빨개져 혼잣말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대학 강사 생활은 내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까를 고민했던 경험, 격려해 주면 흙먼지를 털고 일어나 걷기 시작하는 학생들에게서 나도 배웠다. 선생님이 되는 특정 직업이라기 보단, 나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일이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걸 발견한 건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젠 학생들의 가르침을 격려 삼아 내가 흙먼지를 털고 일어날 때라고 생각했으니 일을 통해 성장과 다짐을 할 수도 있구나 싶다. 그런 일은 존재한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되새김질일랑 그만하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워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