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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Sep 16. 2024

[탈레스] 물질의 근원 : 아르케

시끄러운 소리에 이끌려 창가로 몰려간 세 사람은 물 항아리를 든 노인을 봤다. 유진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소란스러운지 귀를 기울였다.


“이 세상은 물로 만들어졌다!”


노인이 소리치자 사람들이 깔깔거리며 비웃었다.


“저 노인은 미친 게 분명하구먼. 딱딱한 책상이나 귀여운 토끼, 그리고 사람도 물로 만들어졌다고? 하하하!”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갑자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태양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그림자에 태양이 삼켜지는 일식이 일어났다. 주변이 캄캄해지자 사람들은 놀라서 흩어졌다.

 

“흑마술이다! 저 노인이 못된 마술을 부리고 있어!”


놀라서 바닥에 넘어진 사람들이 외쳤다.

 

“병정들을 불러! 저 흑마법사를 가둬야 해!”


유진 역시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는데 소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분은 마법사가 아니야. 탈레스란 분이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선생님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최초의 철학자야.”


그때 경찰 특공대와 비슷한 무리가 밀어닥쳤다. 누군가 진짜로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유진이 병정들에 대해 물으니 소녀가 대답했다.


누군가가 생각의 힘을 사용하면 닥치는대로 잡아가는 경비병이야.” 


소녀의 말이 끝나자 플라톤이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유진아,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


유진은 ‘집’이란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그렇다면 방법을 알려주마. 탈레스 같은 위대한 생각 천재들은 특수 아이템을 갖고 있지. 그분들께 아이템을 얻고, 8단계까지 레벨 업 하면 집에 갈 수 있단다. 물론 최고 단계는 영웅으로 거듭나는 10단계지만, 그건 잊어라. 지금까지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거든. 하하하.”


유진은 게임에서 레벨 업을 많이 해본 터라 금세 이해했다. 빨리 아이템을 얻고 레벨을 올려서 엄마 아빠와 저녁을 먹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탈레스와 만나야 하는데, 무시무시한 병정들이 가로막고 있으니 덜컥 겁이 났다. 잔뜩 긴장한 유진을 흘긋 보더니 소녀가 말했다.


“넌 내가 가보고 싶은 진짜 세계에서 온 사람이잖아.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선생님께 배우기도 했고 말이야. 자,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봐.”


유진은 두건을 쓴 채 떠밀리듯 거리로 나왔다. 자세히 보니 병정들은 총과 방탄 방패도 들고 있었다. 검은 헬멧 너머로 전등 빛 같은 붉은 눈이 반짝인다. 탈레스는 태양을 없앤, 못된 마법사로 몰려 병정에 의해 막 끌려갈 참이었다.


“잠깐만요!”



갑작스러운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유진에게 쏠렸다.

 

“사실과 주장을 헷갈리지 마세요! 일식은 방금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까 사실이지만, 저분이 마법을 부렸다는 건 여러분들의 주장일 뿐이에요. 주장엔 타당한 근거가 필요해요."


"흥! 방금 그림자가 해를 삼키도록 한 마법을 봤잖아! 게다가 물이 만물의 근원이란 뚱딴지같은 소리나 하고 있으니... 그게 근거지!"


누군가가 반박한 말에 유진은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말을 이었다.


"마법인지 아닌지는 일단 저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판단하는 게 어떨까요?”


이유를 들은 뒤 잡아가도 늦지 않을 테니까 탈레스의 말을 들어보자고 설득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토론을 하더니 잠시 후, 체포는 나중에 해도 좋으니 일단 탈레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병정들에게서 풀려난 탈레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대화를 시작했다.


유진 : 선생님께서는 이 세상이 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하셨죠?

탈레스 : 휴우. 그렇단다. 물질은 언뜻 보기엔 책상이나 항아리처럼 다르게 생겼지만 계속 쪼개면서 들여다보면 한 가지 근원 물질, 즉 아르케가 있고 그것은 물이라는 게 내 주장이다.

유진 : 아르케란 세상을 구성하는 한 가지 물질이란 뜻이었군요. 저도 유튜브에서 아르케를 찾는 과학자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물이 근원이라고 주장하신 근거가 있나요?

탈레스 : 유... 튜브? 그게 뭐냐? 학교 이름이냐? 흠. 어쨌든 물은 고체인 얼음, 액체인 물, 기체인 수증기라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상태로 변할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은 대개 이 세 가지 상태로 되어 있으니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지.

유진 : 주장에 대한 근거가 또 있나요?

탈레스 : 그럼. 씨앗에 물을 주면 싹을 틔우고 모든 생물은 물이 있어야 살 수 있으니, 생명의 근원도 물이란 걸 알 수 있단다. 게다가 지리적으로도 우리가 발을 딛고 선 땅은 모두 물로 된 바다와 맞닿아 있으니 아르케를 물로 보는 건 당연한 결론이지.

유진 : 다 나름의 근거를 삼아서 주장을 하신 것이군요.

탈레스 : 그렇단다. 주장은 타당한 근거를 가져야 해. 그래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법이란다.  

유진 : 말씀 잘 들었어요. 아르케가 원자도 아니고 물이란 주장은 제가 아는 거랑 조금 다르긴 하지만, 주장과 근거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생각법은 좋아 보여요.

탈레스 : 그러냐? 고맙구나. 그런데 주머니에 달랑 거리는 건 뭐냐?

유진 : 아, 이건 문어 고리예요.

탈레스 : 어허. 문어 고리를 지닌 자라... 혹시? 아니다. 후후후. 용감하게 나를 도왔으니 선물로 물항아리 슬라이드를 태워주마.


 

유진이 ‘물 항아리 슬라이드’란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갑자기 탈레스가 항아리를 들고는 바닥에 물을 쏟았다. 그러자 쏟아진 물이 폭포처럼 바뀌었다. 물길에 휩쓸리며 유진은 엉겁결에 소녀의 소매를 붙잡았다. 덕분에 탈레스와 유진, 그리고 소녀는 거대한 물길에 휩쓸렸다. 워터 슬라이드를 타듯 사람들과 병정들 사이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탈레스는 유진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이게 바로 물 항아리 아이템이란다! 재밌지? 껄껄껄!”


잠시 후 세 사람은 이름 모를 숲에 도착했다. 탈레스가 항아리를 들자 넘실대던 물이 쏙~ 하고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 '마... 마법이다. 마법사!' 유진이 놀라 입을 외치자 탈레스가 말했다.


“너까지! 최초의 철학자인 나를 마법사라고 부르다니! 하긴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만드니 철학자는 마법사일지 모르지. 어쨌든 네게도 물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이 아이템을 주고 싶다. 잘 써보거라.”


탈레스는 항아리를 건넸다. 유진은 신기한 마음에 항아리를 하늘에 비춰보고는 바로 뒤집어써본다. 하지만 폭포는커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탈레스가 말했다.


“허허허. 내가 잊은 게 있구나. 모든 아이템은 반드시 기본 카드와 조합해서 써야 한단다.”


탈레스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카드를 꺼냈다.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카드엔 ‘주근깨’라고 쓰여 있었다. 항아리를 주근깨 카드에 대자 항아리가 그림이 되어 쏙~ 하고 카드 뒷면으로 들어간다.

 

“주근깨 카드는 논리의 기본이 되는 원리를 담고 있지. 즉 주장에는 근거를 댈 것. 그래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단 뜻이다. 다시 말해 주근깨는 주장-근거-깨달음의 줄임말이다. 잘 기억하거라. 사실 내가 최초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것은 물 때문이 아니야. 세상의 근원 물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처음 질문을 했고, 내 생각을 주장-근거-깨달음이란 논리적 순서로 설명해 냈기 때문이지.”


말을 마친 탈레스는 또 다른 항아리를 꺼내 물보라를 일으키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모습을 홀린 듯 지켜보던 유진과 소녀는 발이 풀린 듯 숲 한복판 풀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탈레스의 가르침
: 주장에는 타당한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학습 키워드
: 아르케(물질의 근원) / 합리론과 경험론 / 논술의 구조


철학은 기억을 잃은 채 낯선 세계에서 눈을 뜬 것처럼 세상을 보는 것이고, 그때 떠오른 질문이 철학의 기본 문제라고 배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만 알기 때문에, 진리를 찾는 끈질긴 질문을 시작했습니다.(문답법)  그의 제자 플라톤은 이성이란 도구로 이 세상이 가짜라고 주장했습니다.(합리론) 반면,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였던 탈레스는 눈, 귀, 코, 촉감 등 감각이란 도구로 세상을 탐구하려 했습니다.(경험론)


[경험론] 탈레스 "인간의 감각경험으로 관찰하자" vs. [합리론] 플라톤 "인간의 이성으로 생각하자"  


탈레스는 세상이 무엇인지 알려면, 눈, 코, 귀 같은 감각 기관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이 보이고, 소독약 냄새가 나고, 수영하느라 첨벙 대는 소리가 들리면 수영장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니까요. 이처럼 감각을 통해 경험해서 세상을 파악하는 입장을 경험론이라고 합니다.


경험론은 우리의 감각을 활용한 관찰을 중시하기 때문에 과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반대로 플라톤은 감각은 자주 사람을 속이기 때문에 진리를 찾는 데 적합한 도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앞서 배운 플라톤의 합리론입니다.


철학의 역사는 바로 경험과 이성이란 이원론의 싸움이자 그 싸움을 통한 철학의 발전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무엇인지 밝히는 데 과연 어떤 방법이 맞는 철학일까요? 앞으로 천천히 배워갈 내용이니 기대하세요. 


탈레스(기원전 약 640/624년~기원전 548/545년)는 소크라테스 이전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 밀레토스(지금의 튀르키예)의 서부 해안 지역에 살았던 최초의 철학자입니다. 그는 일식이 일어나는 시기를 예측했고, 풍년을 예측해서 미리 올리브 짜는 기계를 잔뜩 사뒀다가 사람들에게 빌려줘서 큰돈을 벌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가 최초의 철학자로 평가받는 이유는 주장에 합리적인 근거를 내세워 깨달음을 제시하는, 1) ‘주장-근거-깨달음’의 논술 구조를 잘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만 있던 시대에 세상은 하나의 2) 아르케로 만들어졌으며, 그것이 물임을 타당한 근거를 들어 주장했습니다.


 

‘주근깨’, 즉 주장-근거-깨달음은 논술의 기본 구조입니다. 모든 논술은 주장을 하고, 타당한 근거로 주장을 뒷받침한 다음, 깨달음에 해당하는 결론을 제시하는 순서로 글을 구성합니다. 가장 과학적이고 수준 높은 논술인, 박사님들의 연구 논문 역시 논술의 기본구조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서는 세 명이상의 3) 동료 학자가 철저히 주장과 근거의 타당성을 검토합니다. 



1 논술의 구조(주근깨) : 논술의 기본 구조는 주장-근거-깨달음으로 구성됨. 주장은 서론,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본론에서 다루며, 이를 통한 깨달음은 결론에 드러나도록 써야 한다.  

2 아르케 : 물질의 근원, 원리라는 의미. 세상은 다양한 사물로 가득하지만, 실제론 하나의 근원 물질이 있을 것이라고 탈레스는 주장했다. 이 주장은 철학과 과학을 통해 오랜 시간 논의되었고, 현재 많은 과학자는 소립자, 초끈 에너지 등을 물질을 구성하는 아르케로 보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3. 피어리뷰(동료평가) : 동료(peer) 학자가 논문의 타당성을 평가(review)하고 논문 발표 승인여부를 결정하는 심사과정. 논문은 실험과 연구를 통해 얻은 근거를 바탕으로 주장을 하는 일종의 논술로, 동료 연구자들의 엄격한 검토를 통해서만 논문을 발표할 수 있다. 철학에 따르면, 진리는 찾기 어렵다. 즉 정답은 알기 어렵단 것이다. 연구 논문을 통해 결론 내린 정답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따라서 동료 학자는 논문을 평가할 때, 정답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논리적 오류 여부를 엄격히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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