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물량은 충분히 확보했지만 행정이 느려 접종이 세월아 네월아 지연되고 있는 스위스에 사는 사람들에게나, 백신 물량이 아직 충분하지 않아 언제 자기 접종 순서가 올지 모르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화이자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는 얘기를 하는 게 자랑처럼 들릴지 몰라도 나 나름대로는 홍콩에서 화이자 백신을 맞기까지 나름대로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에 홍콩 정부에서 중국산 시노백 (Sinovac)과 화이자 (Pfizer) 백신 중에서 무작위로 놓겠다고 발표하자 국민들 가운데 큰 반발이 생겼다. 백신 종류를 선택할 수 없는 것은 다른 나라들도 같은 형편이었는데 친중 정부에 대한 반감이 센 국민들의 시노백 백신에 거부감이 컸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놓겠다고 해 놓고 거의 다 시노백일 거라는 음모론이 퍼지자 홍콩 정부에서는 시노백과 화이자 중에 선택하여 맞을 수 있게 정책을 바꿨다. 사실 화이자 백신이라고 편하게 쓰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홍콩에서 놓는 mRNA백신은 화이자 백신이 아니라 푸싱-바이오앤텍 (Fosun-BioNTech) 백신이다. 독일의 바이오앤텍 회사가 개발한 코로나 백신을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거대 제약회사 화이자가 마케팅과 유통을 담당하고 홍콩에서는 중국 회사 푸싱이 마케팅과 유통을 담당하는 파트너이기 때문에 같은 제품이지만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중국 회사가 파트너라는 이유로 '내용물도 다른 것 아니냐, 공장이 유럽에 있는 게 아니라 중국에 있는 거 아니냐', 하는 음모론이 퍼져서 홍콩 정부에서는 이 백신 역시 유럽에서 만들어져서 수입되는 거라고 확인시켜 줘야 했다.
그런데 막상 접종을 시작하자 접종률이 너무 낮았다. 이미 홍콩에 사는 전체 인구가 맞기에 충분한 양을 계약했는데 사람들이 백신을 거의 맞질 않으니 정부는 당황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 첫째로 코로나 일일 지역감염 환자수가 하루 0~10명 정도로 낮기 때문에 사람들이 백신을 맞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워낙 코로나 발생 초기에 국경을 막아 버렸고 얼마 안 되는 해외 입국자도 3주 호텔 격리가 의무이며 사람들이 사스 바이러스가 퍼졌을 때부터 습관이 돼서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니 코로나 통제가 잘 돼서 생긴 역설적인 상황이다. 두 번째 이유는 중국에서 홍콩과 가까운 마카오, 심천 등에 들어오려면 다른 백신이 아닌 오직 시노백을 맞아야 할 것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노백 접종 증명서를 들고 들어 오면 중국에서의 자가격리를 면제해 주는 것은 언제부터라고 정확한 일시를 아직 발표하지 않아서 사람들은 바이오앤텍을 맞았다가 나중에 중국 본토에 들어가기 위해 시노백을 또 맞아야 하는 불상사를 겪을까 봐 어떤 백신도 맞지 않고 중국 정부의 자가격리 면제 일정 발표만 기다리고 있다. 내 중국어 과외 선생도 심천 출신이라 코로나 이전엔 부모님을 뵈러 자주 갔었는데 2년 동안 중국인들이 그렇게 크게 생각하는 춘절 명절에도 고향을 가지 못해 아쉬워하면서도 아직 시노백을 맞지 않고 있다. 시노백을 맞고 벌써 10명이 홍콩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물론 사망자 모두 기저질환이 있었고 백신과 사망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고 발표가 났다) 시노백의 안전성을 믿을 수 없는데 자가격리 면제라는 이점도 없이 맞기는 싫다는 것이 홍콩 거주민들의 속내다.
이렇다 보니 당초 노인들과 의료 분야 종사자 등 필수 인력 우선이었던 접종 대상이 이제는 만 30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맞을 수 있게 확대되어 나에게까지 순번이 왔다. 만 30세 이상은 누구나 맞을 수 있을 거라고 발표한 후 처음으로 접종 예약을 온라인으로 받는 날이 왔다. 나와 남편은 사람들이 몰려서 예약 사이트가 먹통이 되진 않을까 해서 컴퓨터 3대를 동시에 켜 놓고 사이트가 열리는 아침 시각이 되자마자 들어갔는데, 웬걸 생각보다 너무 쉽게 예약이 되는 거였다. 그만큼 백신 접종 희망자가 별로 없었다는 소리다. 맞고 나서 부작용이 있을 경우, 둘이 동시에 아프면 안 되니까 시간 차이를 두고 남편이 먼저 맞고 일주일 후 내가 맞기로 예약을 해서 남편은 30세 이상 일반인을 대상으로 접종을 시작한 첫날 바이오앤텍 1차를 맞았다.
그런데 며칠 후 홍콩 정부에서 바이오앤텍 백신의 포장에서 결함이 발견되어 접종을 중단한다고 발표를 하는 일이 생겼다. 꽤 많은 숫자의 백신 병들이 뚜껑이 헐거웠거나 이미 내용물이 새고 있었다고 주사를 놓은 간호사들이 보고한 것이다. 마트 진열대의 주스 뚜껑이 열려 있어도 변질을 우려해서 안 사 먹을 텐데 백신이 포장 불량이라니...... 1차 접종을 마친 남편은 이 소식을 듣고는 어쩐지 몸이 아프고 두통이 있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이런 게 노시보 (nocebo) 효과인가? 아니면 원효대사의 해골물 효과라고 불러야 하나. 이제 음모론은 (또!)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바이오앤텍 백신에 대한 불신을 키워 사람들이 시노백을 찾게 하려는 수작이다', '역시 아무리 유통만 담당한다고 해도 화이자가 아닌 중국 회사인 푸싱이랑 협력한 게 결함의 원인이다', 등등 의심과 확증 편향과 불안의 언어들이 세간에 떠돌게 되었다. 이런 의심의 불꽃에 기름을 붓기라도 하듯 신문에서는 바이오앤텍이 공장을 유럽에서 중국으로 옮길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여 '거 봐, 중국산을 맞게 하려는 밑 작업이라니까!' 확신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의 일상에 큰일이 벌어졌다. 남편의 직속상관이 스위스에서 화이자 백신 2차 접종 사흘 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금요일에 웃으면서 화상 회의 함께 하고 서로 주말 잘 보내라고 인사했는데 토요일 아침에 밥 먹다가 상관이 심장마비로 갔다는 소리를 들은 남편이 충격받아 울고, 선천적 장애를 안고 태어나서 수술도 많이 했었다는데 그 많은 죽을 고비 다 잘 넘기고 허무하게 백신 맞고 가다니 그의 인생사가 어찌 이리 기구한가 싶어 나도 울고, 아빠의 보스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천국에서 편히 쉴 수 있게 지켜 달라고 아들이 하는 기도에 다 같이 또 울고...... 침울한 시간이었다. 아무리 장애가 있고 몸이 약한 사람이었다지만 나이도 50대로 젊은 편이었고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잘하고 있던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심장마비가 찾아왔다고 하니 백신의 부작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정작 유족들은 담담하게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품위 있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와서 남인 우리가 이러쿵저러쿵 입길을 떨면 안 되겠군, 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바이오앤텍 백신의 포장 불량을 조사한 홍콩 정부에서 내용물에는 결함이 없다는 결과를 발표했고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어쨌든 남편이 멀쩡히 (?) 살아 있으니 그냥 원래 계획대로 백신을 맞기로 결정했다. 조금 불안해서 내가 쓰러지면 언제라도 달려와야 한다고 남편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비장한 각오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푸싱-바이오앤텍 백신 접종 센터인 Boundary Street Sports Centre로 출발했다. 얼마 전 미국 뉴햄프셔에서는 어떤 남자가 1차 백신은 모더나를 맞고 2차 백신은 의료진 실수로 화이자를 맞는 사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홍콩처럼 이렇게 백신의 종류에 따라 아예 접종 장소를 다르게 하면 그런 혼동이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카페, 식당, 미술관 등 공공장소를 들어갈 때 필수적으로 체크인해야 하는 LeaveHomeSafe 앱에 체크인을 하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이 앱이 내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하는 건 아닐까 해서 핸드폰에 깔기 싫었는데 이용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고, 또 감염 경로 추적은 확실하게 해 주는 장점이 있어서 처음보단 덜한 거부감으로 이용하고 있다.
몇 번이나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을 한 후 대기실에 가서 광둥어로 된 백신에 대한 안내 방송을 보고 있는데 스탭이 다가와서 그만 주사실로 가도 좋다고 한다. 알고 보니 서류에 사인만 하면 바로 주사 맞으러 가도 되는 거여서 다른 사람들은 요령껏 대충 보고 나갔는데 광둥어를 모르는 나만 혼자 끝까지 앉아서 안내 방송을 다 보고 있었던 거다. 주사 놓는 부스에 가 앉으니 간호사가 몇 가지 질문을 한다. 이름이 뭔지, 홍콩 아이디 번호는 뭔지, 오늘 맞기로 한 백신 종류는 무엇인지, 이런 정보를 확인하고 백신 접종을 포함한 내 의료 정보를 eHealth에 공유해서 홍콩의 공공 병원에서 내 병력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데 동의하고 싶은지 묻는다. 나는 yes라고 했고 우리 남편도 뭔지도 모르면서 yes라고 했단다. 주사가 들어갈 때만 약간 따끔할 뿐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순식간에 접종이 끝나고 다시 대기할 것을 안내받았다. 지나치게 냉방이 센 체육관 안에 1차 접종을 끝낸 사람들과 2차 접종을 끝낸 사람들이 색깔로 구분된 구역에 나눠 앉아 핸드폰만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실내 촬영이 금지라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겁도 많고 의심도 심한 기우(杞憂)쟁이인 나는 '15분 기다렸다가 이상 없어 나왔는데 16분 되는 순간에 쓰러지면 어떡해', 라는 마음으로 진득하게 앉아 있었는데 하도 안 가니까 스탭이 다가와서 이미 15분 지났다고 가도 된다고 해서 쫓겨나다시피 체육관을 나섰다.
그렇게 걱정했는데 별 탈 없이 끝나니 감사한 마음 반, 허탈한 마음 반이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집에 가서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과 걱정은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몸이 탈수 상태이면 증세가 더 심할 수 있다고 해서 며칠 동안 의식적으로 물을 많이 먹고 백신 맞은 팔을 자주 돌려주면서 몸을 움직였다. 그랬더니 별다른 이상 없이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평소 상태로 돌아왔다. 운동 마니아에 평소 건강 관리를 철저히 하는 남편도 백신 접중 후 48시간 동안 몸살 기운과 피곤함, 무력감을 느꼈는데 운동과는 담쌓고 막 사는 나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아서 민망할 지경이었다. 건강한 사람이야 전혀 안 아프다가 팔에 근육통 좀 있으면 내가 아프구나, 느끼겠지만 나처럼 애 낳고 원래 삭신이 쑤시는 게 디폴트 상태인 사람은 팔에 근육통 하나 더해진다고 특별히 더 아프게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모를 일이야, 더 지켜보자'하고 마치 아프기를 기대라도 하는 것처럼 별러 봤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별 일 없어서 이제는 이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코로나 백신 1차 접종을 무사히 완료했다고.
백신 접종을 하고 나서 받은 스티커에는 'Protect yourself and others, Get Vaccinated'라고 쓰여 있다. 이미 이 백신 자체를 둘러싸고 너무 많은 음모론이 생겨났고, 이것은 더 이상 의학적인 이슈가 아니라 정치적인 의제가 되어 버렸다. 나 역시 불안감에 휩싸여 봤고 백신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기에 백신에 대해, 백신을 공수하고 보급하는 정부에 대해 불신하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주 작은 확률일지라도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한쪽 팔을 내어 주는 건 헌혈만큼이나 공동체를 위한 행위가 아닐까. 남을 보호하는 일이 나에게 선한 결과로 돌아오고 나를 보호하는 일이 남에게도 덕이 되겠거니, 하는 믿음으로 모두가 처음 겪어 불안한 이 시절을 이겨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