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부모님께서는 내가 왼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이렇다 말씀을 안 하셨고 글자를 쓸 때나 다른 일을 할 때 굳이 오른손을 사용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으셨다.
그래서 난 자연스럽게 가위나 여러 도구를 사용할 때, 글자를 쓸 때는 왼손을 사용하게 되었다. 식사 때는 양손을 사용했지만 젓가락질만은 왼손사용만이 가능했다.
일상생활에 오른손보다는 왼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느 손을 사용한다고 해서 생활에 불편함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나의 왼손 사용은 금지의 대상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글자를 쓸 때는 당연히 오른손 사용만을 권하셨고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는 왼손 젓가락질 사용으로 어쩔 수 없이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가위도 미술 도구들도 모두 오른손 사용을 하게 되었다.
왼손을 사용하다 오른손을 사용하는 게 어린 나로서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왜 우리 부모님은 왼손잡이였던 내 습관을 고쳐주시지 않았나 하는 원망도 조금 들만큼.
익숙하지 않은 오른손을 사용하다 보니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숙제하는데도 몇 배의 시간이 더 필요했고 오른손으로 가위를 사용할 때면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서운 건지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지나면서 자연스레 글쓰기는 오른손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린 시절 난 내가 왼손잡이였던 게 참 싫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문제는 또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난 반곱슬 머리에 속눈썹이 올라가 있었다. 반곱슬 머리와 속눈썹이 올라가 있는 아버지를 따라 나 역시 반곱슬 머리와 속눈썹이 올라가 있는 채 태어났다. 유전자의 힘이란 게 새삼 놀라울 뿐.
어린 시절에는 올라가 있는 속눈썹과 하얀 피부 탓에 어딜 가나 사람들이 다가와 귀엽다며 만지고 비비고 볼을 꼬집고 그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귀여움은 딱 거기까지.
얼마 전에 초 중등 교육법에서 두발, 소지품, 복장, 용모, 휴대기기 등의 검사를 완전히 삭제한다는 기사를 봤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만 해도 학생주임 교사와 선도부에 의해 한 주에 한 번씩 교문 앞에서 두발 및 용모 검사들이 이루어졌었다.
구두도 정해진 높이 외에 지나치게 높은 굽은 신을 수 없었고 교복의 치마 또한 무릎 위로 올라가거나 지나치게 몸에 타이트하게 핏 될 경우 단속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런 내가 월요일만 되면 매번 교문 앞에서 해명 아닌 해명을 하고 있었다.
"화장했니?"
"아니요."
"마스카라 했는데 뭘."
"원래 그런 건데요."
"원래 그런 게 어딨어? 거짓말하지 말고 학생이 화장을 하고 학교를 와?"
"화장하고 온 거 아니고 세수하고 온 건데요."
속눈썹이 올라가 있던 탓에 마스카라를 한 건 아닌지 손으로 만져보고 살펴보고 매주 똑같은 설명을 하고서도 다음 주가 되면 새로운 선도부로 바뀔 때마다 난 또 똑같은 대답을 해야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안면이 익었던 탓에 검사를 하지 않고도 교문을 지나칠 수 있었지만 한 동안은 "화장 안 했어요"라는 말을 거의 입에 달고 살았었다.
반곱슬 머리도 올라간 속눈썹만큼이나 나에겐 귀찮은 존재였다. 생머리인 엄마를 닮은 건 왜 오빠였는지. 학교 다닐 때는 생머리 친구들이 부러웠고 조금 더 커서는 생머리를 휘날리며 다니는 여자들이 새삼 부러웠다.
왼손잡이와 올라간 속눈썹 그리고 반곱슬 머리까지. 어려서는 이런 것들이 참 싫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성인이 되고 보니 오히려 학교 다닐 때 귀찮고 불편했던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지금은 더 편하게 느껴질 만큼의 나로 변해 있었다.
일할 때 양손을 사용하다 보니 남들보다 더 시간이 줄어들었고 식사 때 젓가락과 숟가락을 번갈아 사용하지 않아도 젓가락은 왼손, 숟가락은 오른손, 양손으로 한 번에 사용이 가능하다 보니 편리했다.
학교 때 매주 날 괴롭히던 속눈썹도 성인이 되고 보니 마스카라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되어 출퇴근 시간도 단축, 마스카라 값까지 절약되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반곱슬 머리 또한 요즘은 발전된 기술로 반곱슬도 생머리로 재탄생이 가능한 시대가 되어 굳이 말하지 않으면 내가 생머리인지 반곱슬인지 구분을 못할 정도로 어느 누구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반곱슬 머리가 생머리보다 파마 컬도 더 예쁘고 오래가니 나쁘게만 생각한것들이 오히려 지금이 되어서는 고마울 정도다.
나를 사랑하지 않은 자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는 말처럼 다른 사람과 조금 달라 불편하게 생각했던 것들 모두 당장 눈앞에 있는 것 밖에 보지 못했던 내 짧고도 잘못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건 나 자신. 시간이 흐르면 하나둘 지금과는 또 다른 내 모습으로 변해가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는 나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