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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리 Oct 14. 2019

세 가지 보물

추억은 영원하다.


누군가 내게 "넌 가족 말고 가장 소중한 보물이 뭐야?"라고 물어보면 난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앨범, 우표수집책, 양배추 인형."


나에게 있어 앨범 우표수집책, 양배추 인형은 그만큼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물건이자 보물이다.


이 세 가지 보물에는 오랜 세월과 추억이 함께한다.


첫 번째 보물 앨범. 


사진 찍기와 우표수집이 취미셨던 아빠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많은 사진들을 찍어주셨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로 가족 개인별 앨범을 만들어주셨는데 그 덕분에 내 앨범에는 어린 시절 아빠가 찍어주신 추억 가득한 사진들로 빼곡했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릴 적 사진들 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아빠의 사진 실력이 괜찮았던지 그 시절 여성잡지 사진 뽐내기 코너에도 종종 베스트 컷으로 선정되어 찍어주셨던 사진들이 실리곤 했었다.



요즘은 언제 어디서든 휴대폰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로 편리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그땐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때라 사진을 찍고 사진이 인화되어 가족 손에 들어오기까지 달력을 보면서 설레며 기다리고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빠의 사업 실패 후 우리 가족은 돈과 모든 물건들을 떠나보내야 했고 아빠가 소중하게 아끼셨던 카메라 역시 한동안 볼 수가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물건을 살 수 있을 만큼이 되자 아빠가 가장 먼저 산 물건 역시 카메라였다.


한동안 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 탓에 울적해하실 때가 많았는데 다시 카메라가 생기고 가족들의 앨범엔 또다시 사진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어디선가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있으면 사진이 잘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다른 사람들이 찍어준 사진보다 어린 시절 아빠가 찍어주신 사진들이 유독 빛나는 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몇 번의 사업 실패로 지독하게 힘든 시절이었지만 사진에서만은 밝게 웃고 있는 나와 가족들을 보면 지금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해진다. 


두 번째 보물 우표수집책.


아빠의 또 다른 취미는 우표수집. 아빠는 각양각색의 우표 모으는 것들을 좋아하셨다.


우표수집책엔 기념우표와 연하우표, 시리즈물 우표, 만화우표, 크리스마스 씰까지 그 종류와 모양들이 모두 제각각인 우표들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시대의 대통령들 우표와 그 시절 짧은 문구들이 적힌 우표를 보고 있으면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한 기분이었다.


저출산이 문제인 요즘 시대에 "하나만 낳아 알뜰살뜰"이라는 글귀가 적힌 우표를 보고 있으면 피식 웃음까지 새어 나왔다.


우편물이 도착하는 날이면 아빠는 봉투에 붙어있는 우표를 잘라 물에 잠깐 담갔다가 조심스럽게 떼어내어 말린 후 우표책에 붙이셨다. 곁에서 보고 있자면 어린 마음에도 아빠의 정성과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자라는 동안에도 아빠의 우표 사랑은 계속되었다. 그 해 기념우표나 연하우표가 나오는 날이면 꼭 기억해 두셨다가 빠지지 않고 사 오셔서 우표수집책에 넣어 정리하시곤 흐뭇해하셨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모은 것이 지금은 두 권 분량의 멋진 우표수집책이 되었다.

 

세 번째 보물 양배추 인형.


내가 다섯 살 때 아빠는 해외에 있는 건설회사에 지원해 2년 동안 근무하셨다. 지원동기 역시 조금 더 많았던 급여 때문이었다.


2년의 시간이 흐르고 귀국하시던 날 엄마를 따라 공항에 마중 나갔던 작은 내 품에 안겨주셨던 선물이 양배추 인형이었다.


구불거리는 갈색 머리에 알록달록 주황색 옷을 입은 통통한 양배추 인형에 난 뚱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그날부터 뚱이는 나의 애착 인형이 되었고 모질고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이자 가족과 같은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천둥이 치던 날도 사업 실패 후 채권자들이 몰려와 집을 쑥대밭을 만들어놓고 가던 그 밤들에도 언제나 내 곁엔 뚱이가 함께였다.


어린 시절 아빠가 찍어주신 사진 곳곳에서도 언제나 내 친구 뚱이가 함께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깨끗하던 뚱이 얼굴에 까만 손때가 자리 잡았고 속바지에 고무줄마저도 헐렁하게 늘어졌지만 지금도 내 화장대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뚱이를 보면 예전 수많았던 기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소중히 여기는 보물들은 모두 아빠의 손길과 애정이 담긴 물건들이다. 잘 정리되어 있는 사진들이 담긴 앨범들과 연도별로 나누어져 있는 우표 수집책 그리고 낯선 곳에서 힘들게 일해 받은 첫 윌급으로 딸 선물이라며 사 주신 뚱이까지.


언젠가 친구가 "넌 집에 불이 났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챙기고 싶은 물건이 뭐야?"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넌 왜 질문이 그렇게 극단적이야? 불이 나면 신고 먼저 해야지." 하면서도 난 "신고 다음엔 앨범, 우표수집책, 뚱이 인형 챙겨서 나가야지."라고 답했었다.


아빠의 취미가 어느새 나의 취미가 되기도 한 물건들에는 모두 오랜 세월과 함께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우리 가족의 추억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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