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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리 Oct 14. 2019

진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 집에도 산타할아버지가 산다.

어린이들에게 일 년 중 가장 설레는 날이 있다면 생일, 어린이날 다음으로 크리스마스일 것이다.

어른이 된 내게도 크리스마스에 얽힌 소중한 추억들이 있다.


어린 시절 난 해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두근두근 설레는 기분에 하루 종일 하늘 위를 날곤 했었다.

그 시절 내게 있어 부모님 다음으로 가장 큰 존재였던 산타할아버지.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를 외치던 노래 가사처럼 12월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산타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내가 뭐 잘못한 일은 없나?' '나 엄마 심부름 엄청 잘했는데 산타할아버지는 정말 다 알고 계실까?' 갖가지 생각들로 내 머릿속은 가득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엄마, 나 심부름도 잘하고 숙제도 열심히 하고 일기도 안 빠뜨리고 꼬박꼬박 썼는데 산타할아버지가 진짜로 다 알고 계셔?" 물어보면 엄마는 늘 "산타할아버지는 원래 모르는 게 없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멀리서 누가 나쁜 말 쓰는지, 거짓말하는지, 부모님 말씀 안 듣는지, 다 보고 계시거든." 하고 답하셨다.


엄마의 말을 찰떡같이 믿던 난 12월이 되면 산타할아버지께 선물을 받기 위해 없는 심부름을 만들어서라도 했고 공부도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했었다.


그 무렵 난 루돌프가 이끄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 마차를 함께 타고 하늘을 나는 꿈도 꾸곤 했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이되면 아빠는 언제나 크리스마스 카드 두 장을 손에 들고 오셨다. 그리고 설렘으로 가득한 내게 카드를 주시며 산타할아버지께 편지를 쓰라 하셨다. 받고 싶은 선물을 그 카드에 적으면 산타할아버지께서 보시고 내가 올해도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였다고 생각 들면 꼭 오실 거라고.


착한지 나쁜지 심판받는 기분이었지만 난 아빠가 건네주신 카드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산타할아버지, 저 엄마 심부름도 엄청 많이 했고요, 공부도 열심히 잘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탔어요." 구구절절 엎드려 편지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항상 마지막엔 받고 싶은 선물과 함께 "산타할아버지 사랑해요!"로 마무리하며 올해도 선물 주시기를 은근히 강요하는 글을 적곤 했었다.


그렇게 카드가 완성되면 아빠는 늘 맨 마지막 카드 겉 봉투, 받는 사람 주소에 하늘나라 1번지를 적으셨다. 아빠 말로는 산타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곳 주소가 하늘나라 1번지라고 하셨다. 주소를 적고 "아빠가 편지 잘 부칠게."라며 완성된 카드를 들고 밖으로 조용히 나가시곤 했다.


어린 난 '산타할아버지는 정말 어마어마한 부자구나,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아이들에게 선물도 주시고 집 주소도 1번 지지, 원래 숫자 1이 좋은 거잖아. 1번으로 좋은데 사시나 봐' 말도 안 되는 상상들을 했었다.

그 당시 어린 나에게 산타할아버지는 요즘으로 말하면 만수르급의 존재였다.



주소까지 다 쓴 카드를 보낸 후 크리스마스이브가 찾아올 때까지 난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내가 적은 선물 꼭 받고 싶은데...' 별별 생각과 상상들로 하루빨리 크리스마스이브가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크리스마스이브까지 그 이틀의 시간이 일 년의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지던 때였다.


일곱 살 때부터 5학년 때까지 산타할아버지에게 난 해마다 선물을 받았었다. 물론 내가 카드에 적어 놓았던 인형의 집이나 장난감들은 아니었지만 학용품부터 다른 인형들까지 크리스마스는 정말 행복함 그 자체였다.


선물을 뜯어보며 너무 좋아 이리저리 방을 뛰어다니다 엄마, 아빠에게 받은 선물을 들고 가 한 시간이 넘게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으며 재잘재잘 떠들었다.


"이거 봐요! 올해도 나 착하게 잘 살았나 봐요."


그리고 6학년이 되던 해 크리스마스이브날. 그날 밤 난 산타할아버지의 진실과 마주했다.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건 딱 6학년 때 까지라고 할아버지는 어린이들에게만 선물을 주시는 거라는 부모님의 말이 생각난 나는 그동안 산타할아버지가 해마다 선물을 주셨는데 산타할아버지가 봉도 아니고 그래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해야지 싶어 결심했다.


방에 스탠드를 켜 놓은 채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기로.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설렘보다도 산타할아버지를 만날 거라는 기대감이 훨씬 더 컸다. 그 시절 난 그 나이까지 뭐가 그리도 순수했었는지 정말로 세상에 산타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산타는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과 싸우기도 수차례. "그런 식으로 사니까 선물을 못 받는 거야! 산타할아버지는 원래 믿는 아이들에게만 찾아오시니까."


믿도 끝도 없는 당당함. 난 그날 밤 산타할아버지를 만나면 꼭 사진을 찍어 세상에 산타는 없다를 외치던 동네 아이들에게 보여줄 참이었다.


그런 내 믿음과 달리 시간이 흘러 열 시가 되고 열한 시가 되어도 산타 할아버지는 오시지 않았다.

그리고 열 두시.


이브에서 넘어가 크리스마스 날이 되었지만 산타할아버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눈이 많이 내려서 그런 거야, 길이 많이 미끄러우니까.'

세상에 착한 아이들은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생각하며 졸려오는 눈을 억지로 떼어가며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새벽 한 시를 가리키던 그때. 그 당시에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참 시크했던 오빠가 방으로 들어와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만을 전하고 나갔다.


"산타할아버지 아빠다."



왜 몰랐을까? 산타할아버지가 아빠였다는 것을. 요즘은 여섯 살만 돼도 다 안다는 그 사실을.

6학년 겨울 오빠가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중학교 입학해서나 알았을법한 진실.


오빠 말을 듣고 받은 충격에 몰려오는 졸음에 결국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고 다음날 내 머리 위엔 반짝이는 포장지에 둘러싸인 선물이 놓여 있었다. 오빠 말대로 아빠가 산타할아버지여서 내가 잠들기만을 기다리다 지치셨던 건지 아빠 눈밑엔 전에 없던 다크서클까지 보였었다.


아빠가 산타였음을 알게 된 그때의 허탈함과 왠지 사기라도 당한 것 같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


지금 와 생각하니 산타할아버지를 그리며 한 글자 한 글자 빼곡히 적어 내려가며 편지를 쓰던 내 모습과 그 편지를 읽고 선물과 함께 답장을 썼을 아빠를 생각하면 그저 웃음이 난다. 없는 살림에 해마다 갖가지 선물을 준비해주셨던 부모님이 새삼 고맙고 미안하게만 느껴진다.


어쩐지 부모님께서 산타할아버지는 외국분이라고 그래서 집도 외국이라고 하셨는데 답장에는 Merry Christmas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한글이었다. 외국분이라기엔 너무나도 잘 쓴 흘림체의 한글.


아빠! 그 시절 어린 나의 동심 지켜주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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