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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리 Oct 14. 2019

쫀드기의 비밀

유혹은 언제나 달콤하다.

먹거리들로 넘쳐나는 시대. 유튜브나 예능 프로그램도 먹방이 대세, 그만큼 요즘 먹는 음식의 종류와 양이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다.


군것질거리로 불리는 과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달콤하면서도 맛 좋은 과자들로 가득 넘쳐나는 세상.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구입이 가능하다. 얼마 전 종영한 캠핑 클럽이라는 예능프로에서 예전 인기 걸 그룹의 멤버 중 한 명이 옛날 간식이었던 쫀드기를 손에서 놓지 않고 먹는 모습이 전해졌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가게나 학교 앞엔 쫀드기, 아폴로, 맛 기차 콘, 신호등, 꿀맛나, 꾀돌이, 어포, 호루라기 사탕 등 이름도 모양도 생소한 갖가지 과자들 가득했고 우리는 그 과자들을 불량식품이라 불렀다.


불량이란 단어의 뜻이 그렇듯 불량소녀, 불량감자, 소화불량. 어느 하나 불량이 들어가는 단어들은 좋은 의미가 없으니 불량식품 역시도 그리 좋을 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완벽하다 못해 지나치게 깔끔 주의자인 엄마는 내게 불량식품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될 음식 중 하나라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자주 강조하셨다. 덕분에 나에게 있어 그 시절 불량식품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학교 앞에 줄지어 늘어선 문방구에서도 갖가지 불량식품들을 팔고 있었지만 불량식품들이 쌓여있는 그곳으로는 난 눈길조차 보내지 않았다.


그때의 난 불량식품을 먹으면 배탈이 나고 속이 뒤집혀서 건너서는 안 될 강까지 건너게 되는 줄 알았다.


학교에 과자를 가지고 오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어디 정해진대로만 세상을 살 수가 있나, 가방 속에 몰래몰래 숨겨서 불량식품들을 한 개 두 개 가지고 오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쉬는 시간에 먹거나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먹는 친구들까지. 그 친구들 곁에서는 항상 달콤하면서도 알 수 없는 냄새가 났었다.


선생님 눈을 피해 과자를 몰래 먹는 친구들의 입가엔 절로 웃음이 가득했다. 원래 수업 시간에 몰래 먹는 도시락이 맛있고 몰래 보는 만화책이 더 재미있는 법이니까.


괜찮다며 거절하는 나에게 밀어붙이기라도 하듯 친구들이 손에 불량식품을 쥐어주는 날에는 난 손에 다이너마이트라도 한 개 든 것처럼 안절부절 초초했다. 그러다 옷 주머니 속에 쏙 집어넣고는 집에 와서 아무도 모르게 버리곤 했었다. 엄마 눈을 피해 몰래 불량식품을 먹는 건 왠지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일요일.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오던 친구 집에서 모여 놀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메고 온 작은 가방에서 불량식품이라 불리는 갖가지 과자들을 마루에 와르르 꺼내어 놓았다. 그런데 그것들 중 한 가지 과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이름 바로 쫀드기.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야, 이건 원래 살짝 구워야 맛있어." 그리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부엌으로 달려가 쫀드기를 불에 살짝 구워 가지고 왔다. 불에 구워진 쫀드기에선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너도 한번 먹어 봐." "그래, 진짜 맛있어." "먹는다고 안 죽어, 이래 먹으나 저래 먹으나 먹는 음식은 배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 친구들의 계속되는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쫀드기를 한 줄 입으로 가져다 넣는 그 순간.


그 날 난 그렇게 어렵게 지켜온 내 양심을 쫀드기와 바꿔버렸다.

귓가에 맑은 종소리와 새소리가 울려 퍼지고 입안에 들어간 쫀드기에선 달콤하면서도 말 그대로 살아있는 쫀득쫀득함이 느껴졌다. 맛의 신세계를 경험한 순간.


한 번 먹은 쫀드기는 쉽게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르고 늦바람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그날 이후 난 쫀드기 맛에 홀딱 반해 친구들 집에 놀러 가는 날이나 학교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둘러앉아 질겅질겅 쫀드기를 씹었었다. 다른 불량식품이라 불리는 것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쫀드기만은 끊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아시기라도 하는 날엔 홍길동처럼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겠지만 한 번 눈 뜬 쫀드기 맛의 세계에서 탈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시절 난 뒤늦게 눈뜬 쫀드기와 함께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 사라질 것만 같았던 그때 그 불량식품들이 요즘은 오히려 추억의 간식거리가 되어버렸다.

민속촌이나 한옥마을, 축제가 열리는 곳곳에서 쉽게 어린 시절 불량식품이라 불리던 것들을 만날 수 있고 이제는 식품안전관리 인증까지 받은 다양한 맛의 쫀드기들이 등장하니 이제는 불량식품이란 이름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가족들과의 여행에 잠시 들린 휴게소에서 진열된 쫀드기 중 하나를 샀었는데 어쩐 일인지 엄마도 예전과 달리 별다른 말씀 없이 쫀드기 한 줄을 손에 받아 조용히 드셨다. 이제야 엄마도 이래 먹으나 저래 먹으나 배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는 걸 아신 건가?


옛날 처음 느낀 그 쫀드기 맛만큼은 못했지만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고 별미 간식거리로 종종 즐기며 쫀드기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반가울 따름이다.


엄마도 먹었으니 이제 우린 한 배를 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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