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서 발견한 22번째 단어는 "가엄하다"이다. 가엄하다를 선택한 이유는 사람들은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항상 가혹하고 엄격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에게 가혹하고 엄격하기보다는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엄격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와닿는다. 그래서 이 단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꽤 오래된 글이지만, 2014년에 박신영 기자님이 쓴 글이 있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것은, 생각만큼 좋은 일은 아니었다"라는 제목의 글로 나에게는 엄청 인상 깊은 글이다. 해당 글은 스스로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자신과 스스로에게는 엄격한 친구의 경험을 잘 풀어써주셨다. 기자님의 글을 보면 엄격과 가혹이란 단어는 어감이 주는 어려움에 비해 사람이라면 참 쉽게 사용하고, 참 쉽게 느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과거에는 타인에게 엄격하고 자기에게는 관대한 사람이 많았던 거 같다. 그래서 타인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상황이나 환경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타인을 쉽게 비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온갖 합리화와 이유를 만들어 합리화 했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이 많아지는 느낌이다. 내가 생각할 때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가혹해지는 이유는 현재보다 먼 미래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이제 저런 문장만 봐도 숨이 턱턱 막히는 거 같다. 아마 나와 같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한동안은 욜로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스스로에게 엄격한 게 좋은 일이 아니라는 글'에는 "스스로에게만 계속해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스스로를 사랑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공감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무엇인가를 받아들이지못한다. 주변의 응원이나 걱정이 나를 위로하기 위한 거짓말로 느끼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해당 글에 있는 "균형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매우 좋다. 내가 배워야 하는 균형이다. 남들에 대한 잣대와 자신에 대한 잣대를 평등하게 만들자는 미적지근한 가운데의 균형이 아니었다. 기자님의 말처럼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은 쓰임이 다르니, 적재적소에 알맞게 쓰면 된다" 즉, 필요한 때에 맞게 뜨겁거나 차가우면 된다는 말이 꽤 인상적이고 이 부분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스스로에게 "가엄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스스로의 자기반성이 필요할 때는 엄격하더라도, 응원이 필요할 때는 유하게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자님의 말처럼 "균형은 나 자신의 성향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치우침과 매몰됨 없이 그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잘 새겨야겠다. 그래서 오늘 나는 마음속에 "균형"을 다시 한번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