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여든여덟
코스모스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
이규리
몸이 가느다란 것은 어디에 마음을 숨기나
실핏줄 같은 이파리로
아무리 작게 웃어도 다 들키고 만다
오장육부가 꽃이라,
기척만 내도 온 체중이 흔들리는
저 가문의 내력은 허약하지만
잘 보라
흔들리면서 흔들리면서도
똑같은 동작은 한 번도 되풀이 않는다
코스모스의 중심은 흔들림이다
흔들리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중심,
중심이 없었으면 그 역시 몰랐을 흔들림,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마른 체형이
저보다 더 무거운 걸 숨기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원 원장 선생님께 대든 적이 있습니다. 도박을 한다는 그의 이력을 어른들의 대화로 듣기도 했거니와, 수업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학생의 수학 문제 질문에 대답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행동했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그에게로 잘못 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수업 준비도 안 하고
우리를 가르치는 거예요?
그런 내용으로 따졌으나, 되바라진 것은 맞지요.
영어 선생님께서 저를 따로 불러 어른께 그러는 거 아니라고 훈화하셨습니다. 혼내는 게 아니라, 그러다 네가 부러진다며 걱정하셨습니다. 갈대처럼 휘어야 한다, 그렇게 대쪽 같다가는 부러진다.
그때, 혼이 났다면 저는 이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더 엇나갔을지도 모르죠.
그 따뜻한 걱정이 마음에 남아 계속 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 후에도 이 일화가 종종 떠오를 때가, 제가 또 그렇게 대쪽 같을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덜 상처받을 수 있도록 많이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일 때문이었습니다.
때로는 혼내는 것보다, 다독이는 것이 더 강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도 했습니다.
코스모스처럼 흔들리면서도 괜찮다고 부러지지 않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는 기반이기도 했습니다.
뒤늦게 영어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