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아흔여덟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이번 달은 저도 윤동주 시인처럼
우물 속의 가시내가 미웠다가 가여웠다 그리웠다가 했어요. 그리고 우물로 갔다가 떠났다가, 갈팡질팡, 우왕좌왕했습니다.
가을병의 일종인지, 성장통(?)인지.
브런치스토리에 글 쓰기 시작하면서 제 과거는 최대한 묻어두리라고 했던 것은 조금 안일한 생각이었나 봅니다. 지금의 저라는 사람은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것인데, 그것을 감추고 떼놓고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자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물 속 달과 구름과 하늘과 가을은 9월에 남겨두고
그리고 가시내도.
우물 속 좁은 투영된 세계를 떠나
넓은 곳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다음 달은 또 어떨지 기대가 됩니다.
글을 쓰는 건 저인데,
글이 저를 새로운 세계로 이끕니다.
글과 줄다리기하지 않고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볼까 합니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10월에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