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백사십
책들의 귀
마경덕
책의 귀는 삼각형,
귀퉁이가 접히는 순간 책의 귀가 태어나네
주차표시 같은 도그지어1)
졸음이 책 속으로 뛰어들면 귀가 축 처지는 책
킁킁거리며 손가락을 따라가던 책은 그만 행간에 주저앉네
순순히 귀를 내주고
충견처럼 그 페이지를 지켰지만 해가 가도
끊어진 독서는 이어지지 않고 책의 심장에 먼지만 끼었네
귀 접힌 자리마다 쫑 메리 해피 도꾸 누렁이…
쥐약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눈빛이 생각나 눈에 든 문장에 밑줄을 긋네
쫑긋, 귀를 추켜들지 못하고 아무에게나 꼬리를 흔들고 가랑이에 바르르 눈치를 밀어 넣던 비굴한 이름들
흘러내린 두 귀를 실로 묶다가 본드를 발라본 적 있네
셰퍼드처럼 진돗개처럼 자존심을 세우지 못한
아비도 모르는 개들은
마루 밑 신발짝이나 물어뜯다가 복날에 하나 둘 사라졌네
순한 책의 귀,
녀석도 잡견이네 침을 묻혀도 짖지 않고 책장을 찢어도 물지 않네 누군가의 손짓을 따라가 집을 잃은 책들은
귀를 펴고 또 다른 주인을 섬기거나, 귀를 접고 헤어진 주인을 그리워하거나
1)도그지어(dog's ear) : 책장을 접어놓은 부분이 강아지 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 시에서 '도그지어'라는 단어를 배웁니다.
저는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포스트 잇을 붙이거나 접어놓습니다. 보통 그 페이지의 아래쪽을 접는 것이 습관인데, 이제는 위쪽을 접어야겠습니다.
책을 접을 때마다 이 시가 생각날 것이니, 이제 저는 마경덕 시인을 잊지 못 할 것입니다.
그대도 그럴껄요?
저는 또 다른 도그지어 만들러 가볼께요~!!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