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백사십일
꽃병
마경덕
온몸이 입이다
한 입에 우겨넣은 붉은 목 한 다발. 부르르 꽃잎이 떨린다. 잘린 발목에서 쏟아지는 비린 수액, 입안 그득 핏물이 고인다. 소리 없이 생피를 들이키는 저 집요함. 허기진 구멍으로 한아름 허무를 받아먹는.
식욕과 배설뿐인 캄캄한 구멍은 입이고 항문이다.
시한부 목숨들. 나, 나 얼마나 살 수 있지? 물컹물컹 썩어 가는 발목을 담그고 일제히 폭소를 터트린다. 아름답다 저 구멍.
이 꽃병은 제가 좋아하는 회사 언니가 집들이 때 주신거에요. 그동안 몇 번의 이사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리지도 깨지지도 않게 잘 쓰고 있지요.
다만, 일년에 며칠, 쓰이는 날은 길지 않습니다.
어버이날과 딸이 가끔 꽃을 사오는 날, 졸업식 등 특별한 몇 날만 일을 하고 쭉 쉬는 편입니다.
저 화병에 대해 생각을 깊게 한 적은 없으니, 마경덕 시인님 덕분에 저 화병을 바라봅니다.
시인이 표현한 폭소,
꽃의 아름다움인지
시한부를 받아들이는 어이없음의 웃음인지
다른 무언인지 거듭 생각해봅니다.
저 날렵한 꽃병의 깊은 어둠이 문득 무서워지는 건,
이 시를 탓하렵니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