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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시 백사십오

by 설애


출산


설애


그럴 리 없지

네가 내 몸을 떠났다고

내가 껍데기일리는 없지


그런데도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아

자꾸 배를 쓰다듬는다


알맹이가 저기

벌거벗고 말 못 하는 저기

저 아이인 듯


나는 온통 껍데기인 듯하다

그럴 리 없는데


모성애가 교육의 결과인지를 따지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여성의 육아가 모성애라는 근사한 탈을 쓰고 의무로 정착했는가,라는 의미의 논의였어요. 어떻게 결론 났는지 모릅니다.


내 새끼니까 그냥 예쁘다 하는 거지,라고도

친구와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육아와 교육 고수인 친구인데,

처음 출산하고 제 아이가 예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답니다.


저는 임신했을 때, 행복했고,

출산하고는, 허전했습니다.

아이가 물리적으로 나와 연결되지 있는지 여부가 꽤 중요했던 모양입니다.


출산하니, 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죠.

임신했을 때는 온전히 내 것이었는데.


저와 같이 생각하는 여성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아이들이 독립적인 인간임을 스스로에게 많이 주입(?), 세뇌(!)시켰습니다.


저와 아이들은 잠깐 같이 사는 존재인 거죠.

그들의 인생을 제가 좌우하고, 제 꿈을 투영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글을 여기까지 쓰다가 아래 시를 발견했습니다.


내가 천사를 낳았다


이선영


내가 천사를 낳았다

배고프다고 울고

잠이 온다고 울고

안아달라고 우는

천사, 배부르면 행복하고

안아주면 그게 행복의 다인

천사, 두 눈을 말똥말똥

아무 생각 하지 않는

천사

누워 있는 이불이 새것이건 아니건

이불을 펼쳐놓은 방이 넓건 좁건

방을 담을 집이 크건 작건

아무것도 탓할 줄 모르는

천사


내 속에서 천사가 나왔다

내게 남은 것은 시커멓게 가라앉은 악의 찌꺼기뿐이다


출산 후 내게 남은 것은 악의 찌꺼기라는 말이 공감되었습니다.

예쁘고 순진한 저 아기와는 달리, 내게 남은 것은 그 아기를 돌봄으로 발생하는 피곤, 인내, 우울의 시간입니다. 산후 우울증이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시를 나민애 님의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에서 읽었는데, 나민애 님의 위로가 걸작입니다.


당신도 누군가의 천사였답니다.

설애가 모든 천사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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