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에 대하여, 문형배
이 책을 읽은 계기는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명 깊던 차에, 신문기사에서 김장하 님의 장학금을 받은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문형배 님의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라고 낭독한 이이다.
그의 책에서 김장하 님의 흔적을 많이 찾을 수 없었으나, 그는 나무 같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법 없이 살 것 같은 착한 사람들'이 꼭 읽고, 법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문형배 님의 말을 꼭 옮겨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형배 님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나에게 힘써달라고 전화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법을 물어보라."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보장적 기능이다. 이러한 행위를 금지하고 거기에 저촉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이 빛을 발한다. 다른 하나는 보호적 기능이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보호적 기능도 경매 절차에서 배당 요구를 하는 임차인이나 노동자에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은 초라하다.
판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착한 사람을 법을 모르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건일수록 해결이 어렵고,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궁리를 해보았으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착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인가? 불가능은 아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남은 방법은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다. 그 길만이 법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p20~21
이 글을 모두 옮기는 것은, 문형배 님의 취지를 왜곡하지 않고자 함이며, '착한 사람이 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이 책은 문형배 님의 등산하고, 책을 읽고, 사색하는 일상이 담긴 책이다. 그 책에서 내가 '착한 사람이 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유독 정성스럽게 전달하는 것은 깊이 공감했으며, '법 없이 사는' 착한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판사였던 문형배 님에게 판사의 일은 '멀쩡한 사람을 죽이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은 '주위에 불행한 사람이 있는 이상 내가 행복할 수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봉사활동도 하는 그의 일상과 따뜻한 마음을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독서를 좋아하여, 책에 관한 글을 따로 모아 한 부분을 이루었는데, '산 책은 다 읽는다. 재미가 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책에 대해서는 독후감을 쓰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한다.'라고 하니 그의 책에 대한 복수가 재미있었다. 산 책을 위에 다시 산 책을 올리는 나는 산 책을 다 읽는다고 자신 있게 적어놓은 문형배 님의 문장이 마음에 상처와 열등감으로 남았다.
정상에 오르지 않는 등산을 좋아하고, 나무에 해박하며, 책을 좋아하고, 사람을 아끼는 그는 마치 한 그루 나무 같다. 그 나무에는 '멀쩡한 사람을 죽이지 않으려고 했던' 판사로서의 고뇌가 주렁주렁 열려있고, 그의 많은 독서가 나무 기둥 안에서 나이테를 만들고 있을 것 같다.
나무 같은 한 사람.
그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고, 그 사람이 있을 수 있도록 도와준 김장하 님께 감사하고, 나누는 사람과 그 나눔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나무 같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책의 미로> 스물다섯 번째 책
[호의에 대하여]를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