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세계의 연결

빛의 호위, 조해진

by 설애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 소개된 책 중 세 번째로 새로 읽은 책, [빛의 호위]를 소개한다.


[첫 번째 책]

https://brunch.co.kr/@snowsorrow/307

[두 번째 책]

https://brunch.co.kr/@snowsorrow/464




단편 9개로 이루어진 이 책은 내가 처음 만나는 조해진 작가의 책이다. 이미 읽고 소개했던 [쇼코의 미소]와 닮았으나 다르다.

특히 단편들을 읽으며 인상 깊은 것은 세계를, 때로는 두 사람, 때로는 시간, 때로는 사물을 연결하는 방식이 매끄럽다는 점이었다.



첫 번째 단편은 책의 제목과 동일한 [빛의 호위]이다. 카메라를 선물 받으며 구원을 얻은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진정한 구원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끝 한 구절을 옮긴다.


아마도 눈을 한 번 꾸욱 감았다 뜬 뒤, 빛의 호위를 받으며...... 이상할 건 없었다. 태엽이 멈추고 눈이 그친 뒤에도 어떤 멜로디는 계속해서 그 세계에 남아 울려 퍼지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간혹 다른 세계로 넘어와 사라진 기억에 숨을 불어넣기도 한다는 것 역시, 나는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p31


세계를 넘나드는 멜로디는, 세계의 연결, 사람의 연결을 의미한다. 그 멜로디 하나 만들 수 있는 연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단편이었다.




9개의 단편이 모두 기울어짐 없이 좋았다. 그래서 포스트잇이 처음과 끝을 관통하여 붙여져 있다. 이런 책도 참 오랜만이다. 단편이라고 해도, 조금 기울어질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없이 모두 좋았으며, 그 모든 단편이 하는 이야기가 하나의 주제로 꿰어지는 것도 참 좋았다. 재미있냐고 물으면,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조금 칙칙하고, 햇볕에 있다가 그늘에 들어온 듯 조금 서늘한 기운이 있는 책이다. 그런데 그 서늘함이, 오히려 빛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게 이 책이 가진 매력이다.


윤이상의 묘비명에 대해 조사하던 중, 동백림 사건을 알게 되었다. 그 동백림 사건을 다룬 단편이 있어 반가웠다. 단편 [동백의 숲]이다. 아, 나는 책을 통해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도 좋아하지만, 배우는 것도 좋아한다. 이 책이 다룬 소재는 한국 현대사의 난폭한 흔적들이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예를 들어 동백림과 같은 사건을 겪은 것처럼 느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우수하다.


[사물과의 작별]에서 다루어지는 치매와 사물에 담긴 어떤 시절에 관한 이야기도 좋았다. 정말, 이 책의 리뷰에서 좋았다는 빼고 쓸 수가 없다, 나로서는. [사물과의 작별]의 여러 부분을 옮긴다. 포스트잇으로도 모자라 줄을 치고, 메모까지 달아가며 읽은 단편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지하철 역사 귀퉁이의 유실물센터가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표준적인 조각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계는 유실물센터와 유사한 조각들로 끝없이 이어져 있는, 무한히 크지만 시시한 퀼트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엄청난 오지가 아닌 이상 세계의 어디를 가도 그곳엔 지갑과 안경과 책이 있을 것이다.
p62, 도입부
사라졌으므로 부재하지만 기억하기에 현존하는 그 투명한 테투리의 공간 바깥으로는 바람이 일었다. 조각과 조각으로 잇대어진 세계의 표면을 훑으며 부지런히 가을의 끝에 도달한 바람은 건조했다. 어느 순간부터 불결한 냄새가 그 건조한 바람을 타고 내 쪽으로 실려왔다.
p70
특별한 사람과 관련된 일련의 기억은 연극과도 같아서 기억 속 장면들은 실제와는 다소 차이가 나는 인위적인 무대에서 연출될 때가 많다. 기억의 주체는 감정적으로 과잉되기 마련이고, 때로는 사소해 보이는 소품 하나가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불러오기도 한다.
p71
그때마다 나는, 한 개인에게 귀속되지 못하고 망각 속으로 침몰해야 하는 유실물이 세상에 보내오는 마지막 조난 신호를 본 것 같은 상념에 빠져들곤 했다. 일종의 상실감이었다.
p73




현대사의 아픔과

개인의 연결을 담은

<책의 미로> 스물여덟 번째 책

[빛의 호위]를 읽어보시길.


* 덧붙임, 필사를 하며 손으로 읽다 보니 문장이 부산스럽지 않고 매우 간결한데 눈에 그려지는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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