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숨겨온 비밀
아직 어두운 겨울 새벽, 차가운 커피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거실의 공기는 밤새 차갑게 식어있다. 김이 나는 뜨거운 커피를 두 손으로 안아 쥐고 거실의 공기를 흔들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그 공기의 흔들림에 예민한 남편이 깬다. 피곤한 사람이라 더 자게 두고 싶은데, 물을 끓이면서 커피를 타는 소음이 공기를 많이 흔들어놓은 듯하다. 덜 깬 눈으로 나를 보며 소파에 앉는다. 커피 줄까, 하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다. 머그잔에 커피 가루를 털어 넣고 끓여놓은 물을 부어 가져다준다. 아직 공기가 차가워 커피가 빨리 식는다. 커피를 건네며, 겨울이라 커피가 빨리 식는다고 하니, 이제는 정신이 들었는지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왜, 하고 묻는 나에게 니가 타서 그렇다며 이해 못 할 말을 툭 내려놓는다.
나는 가만히 남편을 째려본다. 그러다 깨닫는다. 남편이 타준 커피는 천천히 식는다. 어, 이상하다. 째려보던 눈길이 사그라들며, 갸웃하는 내 표정에 컵을 덥혀야지,라고 말한다. 남편은 "나는 항상 컵을 덥혀서 주는데, 너는 그냥 주잖아." 하며 투덜대며 커피를 마신다. 그제서야 나는 천천히 식는 커피의 비밀을 알게 된다.
남편이 주는 커피, 국은 모두 금방 식지 않는다. 그는 '빨리' 커피를 타서 주지 않는다. 그가 내게 커피를 타줄 때는 조금 오래 기다렸다. 그게 남편이 느긋해서라고 생각했더니, 느긋한 것이 아니라 컵을 덥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커피는 컵을 예열해서 주고, 국은 토렴 해서 주었던 것이다. 식지 않고 오래가는 온기는 그의 정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손끝, 발끝이 차다. 그래서 겨울에는 손과 발이 얼어붙는 느낌이 자주 든다. 그런데 손이 따뜻한 이 남자와 손을 잡고 그의 코트나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으면 추위가 조금씩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차가운 세상에서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주는 사람이기에 나는 그의 곁에 있기를 택했다. 그는 체열만 따뜻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비롯되는 따뜻한 공기는, 이런 그의 세심함에서도 나오는 것이었다.
한파주의보가 발효되어도 나는 그의 곁에 머무르기만 하면 된다.
나의 차가움도, 그 곁에서는 천천히 데워질 테니까.
거실을 천천히 데워줄 해가 밤을 밀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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