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눈 녹듯 녹는다

끝까지 보는 일

by 설애

‘눈 녹듯 녹는다’는 말이 있다.

오해, 분노, 긴장, 불안, 서운함 등이 따스한 말이나 행동에 의해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상상해본다. 눈이 있었던 자리에서 눈이 녹는 장면을. 길가에 모아 놓았던 눈, 화단에 쌓여 있던 눈, 음지에서 버티고 있었던 눈, 높은 산을 하얗게 덮은 눈. 그 눈이 녹은 자리는 축축하고, 가끔은 먼지와 흙이 섞여 흙탕물이 된다. 눈이 녹은 자리는 말끔하지 않다. ‘눈 녹듯 녹는다.’는 말에서 나는 지저분한 흔적들과 질퍽한 질감을 느낀다. 그래서 결국 오해, 분노, 긴장, 불안, 서운함 등의 흔적이 지저분하게 남아 한동안은 마음에서 질퍽하게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찌질하고 한심한 나는 누군가가 사라진 빈 자리를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끝까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애라는 필명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보통 ‘눈을 사랑한다’는 뜻을 떠올린다. 하지만 雪哀로 ‘눈의 슬픔’이라는 뜻이다. 눈이 왜 슬픈가. 눈은 세상 모든 색을 덮어 원래 색을 감추어 버린다. 존재를 잃어버린 모든 것들의 슬픔. 그것이 첫 번째다. 그리고 눈이 녹을 때의 지저분함. 그게 두 번째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시 동아리를 만들어 필명을 지었던 그 겨울에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눈이 많이 내려 발 아래로 하얀 설국이 펼쳐졌다. 나는 한기를 느꼈다.


저 눈은, 진실을 가렸어.


이것이 내 느낌이었다. 한참 예민한 시절의 감상이다. 그렇게 만든 필명은 나를 오래오래 따라다니며, 실명이 아닌 이름을 써야 할 때 그 자리들을 채워가며 나와 함께 지내왔다.


시절 영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같이 시를 썼던 그녀의 필명은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의미였다. 설애와는 반대말이다. 눈의 슬픔, 내가 느꼈던 눈의 가증스러움과는 다른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완전히 반대인 필명이었다. 그 필명과 같이 운명처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가끔 상처를 주며 서서히 멀어졌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선을 넘었고, 그녀는 철저하게 선을 지켰다. 그녀의 세계는 넓었고 내 세계는 좁았다. 시끄러운 음악을 들은 후에는 바흐를 들으라고 알려준 것도 그녀였다. 그런 그녀는 내가 상자 안에 갇혀서 못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내 상자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맞지 않음을 수없이 확인해가며 멀어졌다.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겨우 한 학기를 연장해 나갔던 나와는 달리, 그녀는 휴학하고 집에서 받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최소한으로 써가며 모은 후, 해외로 떠났다. 집에 알리지 않은 휴학이었으며, 해외로 떠나는 결단력과 자유로움은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때서야 나는 그녀가 이야기하던 내 상자를 느꼈다. 성실하고 착실한 사람. 정해진 것 같은 길로만 가는 사람. 그게 진짜 나인지, 그렇게 살았어야 했던 나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상자 안에 있음을 인정했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져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육아하고, 그 모든 것이 평범함에 가까웠다. 평범하기도 어렵다지? 나는 그 어려운 일을 참 차곡차곡 해왔다.


눈 녹듯 사라졌다. 그렇게 나와 그녀의 시간이 사라졌다. 내가 그녀를 찾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은 그녀가 화를 냈다. 연락이 되지 않으면 그만 둬야지, 연락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찾아다니냐고. 그때를 시작으로 내 마음의 그녀는 녹기 시작했다. 수년이 지난 후, 그녀에게 메일이 왔다. 그때 그녀의 사정, 내게 그렇게 매몰차게 굴었던 이유, 미안하다는 말. 하지만 질퍽해진 내 마음에 그녀의 사과는 산뜻하게 닿지 못했고, 나는 구질구질하게 답장을 하고는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이런 말을 썼던가.


눈 녹듯 사라진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구질구질하고 찌질한 말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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