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서른다섯
바람이 좋은 저녁
곽재구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바람은 내 어깨 위에
자그만 그물 침대 하나를 매답니다
마침
내 곁을 지나가는 시간들이라면
누구든지 그 침대에서
푹 쉬어갈 수 있지요
그 중에 어린 시간 하나는
나와 함께 책을 읽다가
성급한 마음에 나보다도 먼저
책장을 넘기기도 하지요
그럴 때 나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
바람이 좋은 저녁이군, 라고 말합니다
어떤 어린 시간 하나가
내 어깨 위에서
깔깔대고 웃다가 눈물 한 방울
툭 떨구는 줄도 모르고.
바람 좋은 저녁에 책 읽는 풍경이라니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 저녁에 '어린 시간 하나'가
같이 책을 읽어준다니, 행복합니다.
동화 같은 일입니다.
여름 저녁은 더위를 피해
책 읽기 좋은 시간입니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책의 미로로 들려주세요.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