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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화 Oct 22. 2020

건강한 아기가 갑자기 열이 난다면

돌발진

"앵앵~~"


새벽 3시 반, 아기의 울음소리에 눈이 떠졌다. 아기 이마에 손을 얹으니 뜨거웠다. 고막체온계로 재보니 체온은 38.5도였다. 약장 안에 깊숙이 넣어뒀던 아세트아미노펜 시럽을 꺼냈다. 아기의 몸무게는 9kg였다. 권장용량에 맞춰 시럽 3.5ml를 꼬마 약병에 담았다. 아기의 머리를 단단히 잡고 볼 안쪽에 물약을 쭉 짜줬다. 다행히 아기는 약을 뱉어내지 않고 꿀떡 삼켰다. 아기를 안아 토닥여주니 잠이 들었다. 건강했던 아기가 왜 갑자기 열이 나는 걸까...


아기는 생후 8개월이었다. 생애 두 번째 발열이다. 첫 번째 발열은 생후 4개월 때 폐구균 2차 예방접종 때문이었다. 병원을 다녀온 7시간 뒤부터 38.2도 발열이 체크되었다. 열이 18시간 동안 오르내렸다. 열은 우리 몸에 들어온 미생물을 감소시키고 염증 반응을 증가시키는 정상 반응이다. 하지만 열이 오를 때마다 아기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기가 보채고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전공의 시절, 아기가 열이 난다고 응급실을 찾아오는 부모를 많이 만났다. 새벽이라도 병원에 오는 보호자들을 보면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아기를 키워보니 아기의 열에 대해 민감해졌다.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전 8시 아기 열을 재보니 36.8도였다. 체온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여름이라 더워서 일시적으로 체온이 올랐었던가...라고 생각했다. 아기를 맡기고 출근을 했다. 2시간 뒤, 아기의 체온이 다시 높다고 연락이 왔다. 오른쪽 38.6도, 왼쪽 38.4도로 양쪽 고막 체온이 조금 다르긴 했다. 하지만 열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새벽에 먹였던 해열제 시럽을 먹여달라고 부탁했다. 하필 1주일간 꼬박 병원에 나와 일하는데 아기가 아픈 것이다. 엄마가 곁에 없는 것을 알아버린 건가... 열 때문에 고생하고 있을 아기가 많이 생각났다. 첫날에 시작된 열은 6시간 간격으로 38.5도를 오르내렸다. 아기는 열 외에 다른 증상이 없었다. 열이 떨어지면 평소처럼 잘 먹고 놀았다. 


두 번째 날 새벽에도 아기는 열이 나서 울면서 깼다. 아기는 생후 6개월이 지났다. 때문에 생후 6개월부터 사용할 수 있는 부루펜 시럽도 먹을 수 있었다. 열 간격이 3시간 간격으로  짧아졌다. 부루펜과 아세트아미노펜을 번갈아 먹이는 '교차 복용'을 했다. 오후 5시 35분에는 39.7도로 고열을 보였다. 생후 6개월 이후 아기는 엄마로부터 전달받은 항체가 확연히 줄어든다. 아기 몸에서 스스로 항체를 만들어야 한다. 각종 감염에 취약해지는 이유다. 퇴근 후 아기의 목과 귀를 관찰했다. 괜찮았다. 1세 미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요로 감염을 생각했다. 소변 비닐 주머니를 붙여 소변을 받았다. 소변 스틱을 찍어 색깔 변화가 있는지 검사했다. 약한 양성 반응이 나왔다. 병원 응급실에 가서 다시 정확하게 검사를 할까도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기의 컨디션이 좋아서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셋째 날은 마침 남편도 쉬는 일요일이었다. 아기와 같이 내가 일하는 병원에 출근했다. 병원에는 아기 손가락 끝에서 피 한 방울을 짜내어 간단히 검사할  수 있는 기계가 있었다. 백혈구 수와 염증 수치를 보는 것이다. 고열의 원인을 신체진찰과 문진으로 잘 알 수 없을 때 이용할 수 있다. 질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기의 혈액 검사 결과는 바이러스성 질환에 가까웠다. 아기들이 고열로 병원을 찾아오는 '돌발진'이 떠올랐다. 이것은 심한 발열이 72시간 정도 지속되다가 서서히 열이 내린다. 하루 정도 지나면 열이 갑자기 내리면서 발진이 핀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아기는 3일째 39도의 열을 오르내렸지만 컨디션은 첫날에 비해 점점 회복하고 있었다. 열의 간격도 멀어지고 있었다. 열이 높으면 경련이 동반될 수 있다. 충분한 수분 섭취를 하고 해열제로 열을 떨어뜨려주는 것이 중요했다. 


넷째 날, 아직 아기가 깨지도 않았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눈뜨자마자 아기의 체온을 측정했다. 36.8도로 정상이었다. 오늘도 고열이 계속 나면 대학병원으로 갈 생각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병원과 계약한 기간이 끝나 하루 종일 아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기의 옷을 들춰보니 몸 곳곳에는 붉은 반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얼굴까지 울긋불긋할 정도로 뒤덮었던 반점은 이틀 뒤 조용히 사라졌다. 대신 아기는 짜증을 많이 내고 잠을 잘 안 자려고 했다. 정말 애먹었다. 그래도 더 이상 열이 나지 않고 아프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돌발진은 건강하던 아기가 갑자기 39도의 고열이 난다면 생각해볼 질환이다. 우리 아기처럼 생후 6~9개월 아기들이 많이 걸린다. 하지만 바이러스 종류에 따라 돌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감염될 수도 있다. 돌발진은 성인의 침으로 감염이 된다. 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딸내미를 보며 누군가가 뽀뽀를 했나 보다. 아기는 어른이 뽀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이다. 어쨌든 아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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