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바다에 가본 적 있어요?

드라마 속 주인공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산 그녀의 소박한 꿈.

by 화몽
太太, 你去过大海吗?
사모님, 바다에 가본 적 있어요?


결혼 후 나는 서해를 건너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나라, 중국 북경에 살게 되었다.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보다 호기심으로 꽤 오랜 생활을 중국에서 보냈다. 부러움 반 걱정 반. 주변 시선의 크기만큼 나는 힘겹기도 했고 얻은 것도 많았다. 북경, 우한, 광주, 또다시 북경을 거쳐 몇 년 전 남경의 생활까지 10여 년. 묶고 풀었던 이삿짐 보따리만큼 많은 인연을 만나고 스쳤으며 그들과 함께 웃고 울었다.


감사하게도 중국에서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분이 계셨다. 덕분에 하루 2~3시간이라는 선물이 내게 생겼다. 난생처음 대한민국을 벗어나 你好. 再见. 谢谢. 달랑 세 마디 배워 시작한 북경 생활. 같이 장도 보고 음식도 가르쳐주시는 고마운 이모님이 함께였다. 임신 7개월, 우한이란 도시로 갑자기 이사하여야 할 때도 그분은 하시던 일들을 다 접고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 주셨다. 큰아이를 낳기위해 서울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 날 돌봐준 은인이었다.


6여 년 후 우리 가족은 남경에 살게 되었다. 큰아이 유치원에는 내게 힘든 교칙이 하나 있었다. 등하교할 때 교실 앞에서 보호자가 담임에게 아이를 보내고 데려와야만 했다. 왕복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는 내가 오가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4살 먹은 동생이었다. 매일 아침 잠든 채 유모차 속에서 오가게 하는 건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그것도 아직 추운 1월 말. 주변에서도 이리 오가는 나를 보시다 못해 좋은 이모님을 소개해주었다. 우리는 이모님을 阿姨(ayi)라 칭했고, 그분들은 우리를 太太(taitai)로 불렀다.


그녀는 이름 대신 편히 阿姨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160㎝가 좀 안 되는 키에 깡마른 몸. 주근깨 가득한 시골 소녀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한 미소가 밝은 20대 중반의 여인이었다. 그녀에게는 쭈니보다 한 살 어린 아들이 있었고, 주말에 아들을 만나러 남경 외곽의 집에 가는 것이 삶의 낙이요 존재 이유였다. 10대 말에 아이를 낳고 20대 초부터 고향 근처 도시로 나와 가사도우미로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그녀. 그런 사정을 잘 아는 나는 10살 터울의 큰언니처럼 그녀와 지냈다. 그렇게 일 년 이년 시간이 흘렀고,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다정스럽게 바라보는 그녀에게 말을 꺼냈다. 아들을 우리 집에 종종 데리고 오라고. 아파트 수영장에 같이 가거나 놀이터에서 놀기도 했다. 금요일이면 가끔 맛있는 빵이나 김밥, 한국 과자 등을 종이백에 넣어 쓱 내밀었다. 손사래를 치고 들려준 봉투를 내려놓기를 여러 차례, 내 마음을 두고 가지 말아 달라는 말에 그녀는 종종 준비해주는 선물을 안고 갔다. 초여름 복숭앗빛 얼굴로 '谢谢.'라 말하며.


그녀에게도 남편은 있었다. 남의 편이라는 표현이 매우 적합할 남자였다. 결혼 초부터 경제적 활동은 고사하고 밖으로 돌았으며, 그녀의 몸과 마음 여기저기를 호되게 갈겨대기 일쑤였다. 드라마 속에나 나오는 그런 인간. 일여 년을 넘게 그녀를 알게 되니 '그가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녀의 검게 곪은 상처가 밖으로 터져 내 눈에 보이는 날은 서로 멍 자국을 끌어안고 소리 없이 울었다. 내 눈물이 그녀의 생채기에 연고가 되어줄지는 모르겠지만 나로 인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랄 뿐이었다.


우리 집은 아파트 맨 위층이었다. 베란다로 들어오는 해가 제법 좋아 거실 소파에 앉아있으면 그녀가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물론 그녀의 언어를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항상 흔들리는 눈으로 내게 말을 걸었기에 그 의미를 알아채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날도 그랬다.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같이 보고 있었다. 적당한 햇살들이 우리 사이를 오갔고 그녀가 문득 내게 물었다.


太太, 你去过大海吗?大海是什么地方? 那么大,那么蓝,那么深吗? 我的梦想是死前到海里去看看.
-- 사모님, 바다에 가본 적 있어요? 바다는 어떤 곳이에요? 저렇게 크고, 저렇게 파랗고, 저리 깊나요?

제 꿈은 죽기 전에 바다에 가보는 거예요.
阿姨, 你真的没去过大海吗?
-- 바다에 정말 가본 적이 없어?
是的.
-- 네.


나는 바로 가봤던 바다 사진들은 모조리 찾아 그녀에게 보여주며 설명했다. 거실벽에 있는 세계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중국과 한국의 근해, 태평양과 동남아 해까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내가 전해줄 수 있는 사실과 감성들을 꺼내놓았다. 그녀는 그냥 던진 말인데 이렇게 자세히 알려주니 고맙다며 사진 속 동해 일출처럼 환히 웃었다. 그냥 던진 말이 아니었음이 알았기에 꼭 바다에 갈 수 있을 거라 손을 잡아주었다. '왜 나는 사는 게 이리 힘들까요? 욕심도 없고 바람도 크지 않은데 사모님 집 같은 아파트도 자동차, 레고 같은 아이의 장난감도 필요로 하는 게 아닌데, 그냥 가난해도 평범하게 살 수 없을까요?'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괜히 바다 사진을 펼쳐놓으며 그녀의 마음을 더 아픈 게 한것은 아닐까 싶어 미안함만 커졌다. 그날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녀를 안아주는 일뿐이었다. 같은 여자로 그 꿈을 나도 알고 있기에...


얼마 후 그녀의 주변에 엄청난 허리케인이 불었다. 그녀의 남편은 정말 드라마 속 악인처럼 병으로 갑자기 죽었으며, 그녀를 아껴주는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봐온 이였던 것 같았다. 자기 아들을 너무 아껴준다며 행복한 마음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럼, 그녀도 행복해야 할 자격이 충분해.' 꿈을 바라고 그곳을 향해 날갯짓을 하려는 상처투성이 작은 새였다. 수줍음을 어찌할지 모르며 그녀는 내게 거뭇하게 거칠어진 손을 내밀어 보였다. 그런데 그날 그녀의 손은 바닷가 모래알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와! 그녀를 보았다.

"그 사람이 이번 주말에 바다에 가자고 했어요."

아! 이보다 더 로맨틱한 프러포즈가 있을 수 있을까? 얇은 실반지에 그의 애정이 한없이 반짝거렸다. 그녀를 보고 그냥 큰 미소를 지었다. 잘 되었다고. 이렇게 빨리 꿈을 이루었으니 정말 정말 다행이라고...


남경을 떠난 지가 벌써 5년이 지났다. 그 후 바다를 보면 항상 그녀가 생각난다. 그녀는 지금 그 꿈을 어찌 가꾸어가고 있을까? 순박한 그녀의 꿈. 보통의 가정이라 말하는 생활을 감히 욕심내었다고 말하는 꿈. 어쩌면 그것은 그녀뿐 아니라 나의 꿈일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가 모두 바라는 내일일 수도 있다.


아, 그녀와 나의 꿈에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나는 꿈속에서 바다를 보는 대신 산을 오른다. 사랑하는 이와 산 정상을 향해 오를 뿐이다. 각자의 보폭에 맞게 오르지만 너를 위해 잠시 기다려주기도 하며 바람을 맞고 나무숲을 걸어 오르는 이것이 내 꿈의 전부이다. 보통 사람의 소박한 꿈.


< 나의 바다, 그녀의 바다는 어떤 기억이 되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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