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

화花몽梦그리다.

by 화몽


구덕진 장마라
덕지 떡찌 삼일우에 껌딱지로 들러붙어
습숩함에 잠 못 이루는 건 나뿐만은 아닐 터
장대비 헤치듯 두 눈 라이트만 누런 천정 향해 검벅껌뻑.
그만 자마.

누가 그랬다지
세상에 나 부모보다 고마운 이, 캐리어 박사라고
감사합니다. 님 덕에 겨우 집구석에서 피어오르는 꼬롬한 꽃 꼴은 면하네.

두어 시간 전
이젠 잘 끼다. 하셨는데,
아빠는 왜 이리 잠못드시나
엉덩이 밑이 꿉해지셨나 서걱대는 모시이불 소리에
위대한 박사님 덕좀 보자.

은덕에 풍결 따라 길 떠날 즈음

‘그 넘 꺼. 그 넘 차가 들면 기침 난다.’
암, 아빠 말씀이 그럼 죄다 옳아. 그렇고 말고.
새벽은 기우는데 밖은 어두운 땡볕
물 반 공기반 허공에 그득한 빈공기만
내가 해치운 그릇수가 이 집 채우고 넘칠 텐데 모든 게 걱정은
여전하시네.

오도 가도 못하니 발발발
깡그리 다 아비 간장을 죄다 태워 묵어.
먹고 입고 자고 싸고,
너 사는 거 몽창
내 눈 안에 담을진대

그래서 아비가 잠을 못 자.
엄마란 게 돼 가꾸도 찬바람에 누버있으니,

그깟 돈이 아까운기 아이야.
아.
아 알아요, 안다고요 내 말으...ㄴ
어.
아닌데 아니고 아리라고,
전기값이 많이 나와 끄란 게 아이야.




지금 내가 지내고 있는 이 집 앞에 '친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지 17년이 지났다. 결혼 후 큰아이를 낳기 위해 한국에 와 있을 때를 빼면, 요즘처럼 오랫동안 머문 적이 없었다. 올초 3번째 국제이사를 가며 고입시험을 앞둔 큰아이를 친정집에 부탁드렸다. 그러나 나와 둘째 아이는 출국한 지 한 달도 못 채우고 짐가방을 싸들고 친정집에 들어왔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그렇게 7여 달이 지났다. 친정집에 나와 아이 둘이 반년 넘게 붙어있다.


요즘 매일 아침 아빠 엄마와 같이 밥을 먹는다. 결혼 전에도 부모님과 아침을 같이 먹었던 게 몇 번이나 있을까 싶은데, 셋이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생각해보면 감사한 시간이다.

그런데 70대 아빠와 엄마, 40대 중반의 딸. 셋의 캐미가 애매하다. 두 분 사이 쌓인 애정만큼, 앙금도 톡 하면 터질 것 같은 봉숭아꽃 같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난 화가 훅 하고 치민다. 20대 때는 엄두도 못 내었는데, 이젠 나도 아이 둘 엄마라 아빠에게 ' 엄마에게 그러지 마세요.'라고 제법 당당하게 말한다. 물론 바로 아빠의 입술이 부르르 떨고 화르륵 타오르며 큰소리가 나온다. 뭐, 그렇다고 이젠 겁먹을 나도 아니다. 참 많이 컸다. 좋게 말해 바른말한다라고 할 수 있지만, 아빠의 입장에서는 심장 폭행에 가까운 말이다. 이다.


"너! 조용히 안 해! 입 다물고, 무조건 아빠 말 따라!"

아빠의 눈꼬리기 파르르, 두 주 먹이 부르르 떨린다. 전 같으면 바로 깨깽하며 꼬리를 삼단으로 접었을 텐데.

"알았어요. 그만 하죠."

와, 내가 생각해도 정말 싹수없다. 누가? 바로 나.

"알았다. 다음엔 그러지 마라."

어라? 이건 아닌데. 내가 잘 못 들었나? 아빠가 왜 이러셔?

...... 내가 많이 잘못했네.


이번 주 월요일 중국 비자를 신청했다. 나는 곧 집에 간다. 물론 기쁘다. 그리고 아프다. 많이 시리다. 에어컨이 만들어주는 26도의 실내온도보다 훨씬 시리다. 언제 다시 '친정집'에 올 수 있을지 모른다. 외국이라 한번 오기도 쉽지 않지만, 코로나 이게 더 큰 걸림돌이다.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본다는 것, 정말이지. 아빠의 맘이 내 맘보다 더 시릴 것이다. 딸네를 가까이 끼고 지내는 게 평생 꿈이셨는데, 결혼하고 10년 넘게 중국에서 살았다. 아빠는 오늘도 내게 밥을 잘 먹으면 살찐다 걱정, 안 먹으며 아플까 근심이 는다며. 좀 잘하라고 하신다.


최장기간 장마에 쉬이 잠들기 어려운 요즘. 평소 같으면 도망 다니는 그 바람이 떨어지는 마루에 작은아이와 눕는다. 도저히 못 자겠다며 아이가 에어컨을 튼다. 일찍 잠을 청했던 아빠가 한참을 망설이다 나오신다. 감기 걸리면 비행기 못 탄다며. 북경에 못 간다고. 들어가셨다. 또 나오신다. 화장실 가시는 척하시며 다시 말씀을 꺼내신다. 열이라도 나서 집에 못 가면 어떻게 할 거냐며. 내가 대충 듣고 말자, 말끝을 흐리시며 방에 들어가시는 모습이 한없이 작아지셨다. 자연스레 세월을 따라간다지만 변하는 아빠의 뒷 모습을 보니 곱지 못한 말을 내던지려다 되삼 켰다. '나 참 나쁜 딸이네.'


이 여름 친정집에 보일러는 필요 없을 듯, 대신 아빠가 며칠 전부터 폭풍 검색하시던 바퀴 달린 사이드 테이블 하나를 놔드려야겠다. 쥐 매장에서 매우 빠르게. 찍찍아 내 대신 전해줄래? '아빠. 미안해요. 건강하세요.'라고. 사랑한다는 한마디 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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