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08

보라색과 연두색의 하모니 No.1

엄마와 딸, 딸과 엄마 그 사이에 감도는 색의 온도.

by 화몽

"엄마, 또 봐? 티브이만 틀면 트롯 삼총사구먼. 이거 며칠 전에 봤던 거 아냐?
"응, 봐도 봐도 재미있네. 요즘 이 재미 빼면 뭐가 재미있니? 운동도 못 가고, 친구들도 못 만나고, 네 동생도 걱정이고, 그냥 이 총각들 노래 들으면 세상 즐겁네. 우리 영웅이 노래 정말 잘하지. 감정이 아주 죽이다 야. 아싸!"

"이긍. 노래도 참 못하셔. 엄마가 이러니 나도 노래는 영... 엄마는 참, 다른 것 좀 하시라니까 좀..."

"너도 이제 잔소리하냐? 곧 7학년인데, 엄마는 엄마대로 살란다! 노래나 따라 하련다. 잘하던 못하던."


우리의 일상이 바뀌었다. 코로나 19 때문이다. 눈만 떠도 자연스레 가능했던 대부분의 일들이 어려워졌다. 엄마의 유일한 낙이던 주민센터 기체조 시간도 올 스톱되었다. 기체조 스승님과 엄마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동네 주민센터에의 첫 수업 시간이었다. 내가 시집갈 때쯤이니 십육 년 가까이 되었다. 엄마의 영적인 스승님이자 의사 선생님이기도 한 기체조 선생님. 나 역시 같이 운동을 시작한 지 5년 가까이 되었다.


5시 즈음이 되면 일시 귀국한 딸과 엄마는 요가매트를 하나씩 챙겨 각자도생의 길로 떠난다. 나도 해봐서 잘 안다. 기운을 나누는 운동이기에 선생님, 사범들과 함께 할 때와 그 효과를 비교할 수가 없다. 주민 센터가 닫힌 후 엄마는 몇몇 분과 조심스럽게 일산과 파주에 모여 운동을 하셨다. 모두의 마음은 타들어 가는데 역병은 속이 터지게 번지니 엄마도 스스로 같이하는 운동에 종지부를 찍었다. 쭈니와 유니가 있는데 엄마가 운동을 다니면 아빠가 뭐라 하겠냐며. 내가 은근히 압력을 넣은 것도 사실이었다. 엄마는 알겠노라 웃지만 '답답한 마음을 어찌할꼬?' 하시며 티브이 리모컨을 찾았다. 아이들 온라인 수업을 좀 챙기며 점심을 준비하고 있자니 마루가 조용하다. 그럼 그렇지 엄마는 꿈나라에서 트롯 삼총사를 만나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그랬다. 엄마는 나와 소파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가도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엄마는 쉬이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B형 간염 보균자였고, 그 사실을 모른 채 나와 동생을 낳고 젖을 물렸다. 그리고 엄마와 동생이 정말 많이 아팠다. 서너 살 적 내 기억 속에는 엄마보다 외할머니와 이모들이 함께한 시간들이 더 많았다. 그랬던 엄마가 운동을 하며 치유되었다 믿는다. 몸도 마음도 이를 통해 정말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여전히 조금 무리했다 싶은 날이면 레드썬.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엄마는 서서도 잠이 든다. 티브이를 보다 눈을 감고 있는 엄마의 얼굴로 한 장의 그림이 겹쳐졌다. 미술사 시간에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어머니의 초상 말이다.


제임스 휘슬러의 '회색과 검은색의 구성'. 우리에게는 '휘슬러의 어머니'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가장 유명한 그림이기도 한 이 작품은 모성애를 상징하는 대표적 초상화이다. 그는 그림이 주는 감성적 메시지나 감동을 무의미하다 여겼다. 색채가 전하는 순수한 이미지와 율동감이 진정한 회화라는 의미로 작품의 제목을 남다르게 붙였다. 제목이 보여주듯 담담하고 차분한 회색과 검은색이 사각의 프레임을 가득 채우고 있다. 깔끔하고 소박한 실내에 단정하게 손을 잡고 먼 측면을 응시하는 노년의 어머니. 벽에 걸린 액자와 소매, 머리의 레이스만 하얀색으로 강조가 된다. 시간의 무게가 느껴지는 어머니의 눈빛에 보편적인 애틋함이 전해진다. 그러나 정작 휘슬러는 이러한 감동보다는 색채의 흐름만을 봐주기를 원했다.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이 작품을 그릴 당시 휘슬러와 어머니의 사이는 극도로 안 좋았다고 전해진다. 어찌 되었던 유명 작가의 바람과 다르게 나는 이 그림에서 엄마의 모습을 보았고, 지금도 그렇다.


20여 년 전 서양미술사라는 벽돌책속에서 이 그림을 처음 만났을 때, 엄마도 나이가 들면 이런 모습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당시 외할머니의 모습에 가까워 막연히 그려만 보았다. 이제 엄마가 그때 외할머니의 나이가 되었다. 잠시 잠든 엄마의 얼굴에 시간이 새겨놓은 훈장들이 가득하다.


"엄마는 어떻게 어머님보다 얼굴이 쪼글쪼글 할매야? 어머님이랑 거의 띠동갑인데."

"야, 이것아. 너 때문이지. 알기나 하냐? 말하는 것 봐라. 시어머니한테 하는 거 딱 반 에반만 나한테 좀 잘해!"

"에이, 엄마는 내 맴 알면서. 말해야 아나? 우리가 막 잘하고, 용돈으로 표현하고 그런 모녀 사이 아니잖아?

"아이고. 입만 살아서. 딸인지 뭔지. 애들이나 잘 좀 챙겨. 니 일만 하지 말고."

"알았어. 십 년 후에 잘할게. 지금은 일단 같이 점심 먹자. 비빔국수 비벼놨지."

"십 년 후 소리는 십 년 전부터 하더니. 그래, 해놨다니 일단은 맛부터 보자."


아직도 엄마에게 이 한마디 직접 하는 게 그렇게 어렵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는데. 참 쑥스럽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만 터져 나오는 이 단어가 혀끝에서만 맴돈다. 엄마를 떠올리면 뭉클한 마음에 바로 눈시울이 붉어지는 나. 아마도 눈물샘이 터질까 봐 소리 내지 못하나 보다. 입이 안 떨어지니 매콤 달콤 새콤 짭조름한 화몽표 비빔국수에 고명으로 '사랑해요' 이 한 단어를 살포시 올린다.


'맛있지? 엄마. 엄마 딸이 한 음식 하지?
사랑해. 엄마. 고마워요.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함께해요.'
<회색과 검은색의 구성: 화가의 어머니 , 제임스 휘슬러, 1871, 144.3 x 162.5 cm, 캔버스에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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