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말 한마디가 남긴 온기
"집까지 데려다줄까?"
준식이 슬쩍 물었다.
"됐어, 가까워."
나는 손을 휘저었다.
"진짜 괜찮겠어?
은정이는 예전부터 길치였잖아."
준식은 웃었다.
"야, 초등학교 때 얘기 끌고 오지 마라."
"ㅋㅋㅋ 그럼 오늘도 나한테 길 잃었다고 전화하면 안 된다?"
"걱정 마.
요즘은 지도 앱 있거든요, 아저씨?"
"와… 아저씨는 좀 너무했다."
준식이 가슴에 손을 얹고 과장되게 탄식했다.
나는 웃음을 꾹 참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금 앞서 걷던 준식이 어느 순간 내 속도에 맞춰 걸었다.
조용한 골목,
가끔 스쳐가는 바람 소리만 들렸다.
"근데,"
준식이 입을 열었다.
"은정이는 지금 하고 싶은 거 없어?"
"하고 싶은 거?"
나는 생각 없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음… 솔직히, 모르겠어.
그냥 하루하루 버티는 것도 벅차니까."
"…그런 거 치고는, 꽤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은데?"
준식의 말투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그냥, 옆에 있어주는 사람처럼.
나는 대답 대신 작게 웃었다.
"나는 아직 축구 좋아해."
준식이 불쑥 말했다.
"예전처럼 선수가 되겠다는 건 아니지만,
어디서든, 어떻게든, 계속 공은 차고 싶더라고."
"…멋있네."
내가 말했다.
준식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긁적였다.
"은정이도 뭔가 찾게 되면, 말해."
"왜?"
"매니저는 다시 해줄 수 있으니까."
그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것 아닌 농담처럼 들렸지만, 어쩐지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예전의 꼬마 친구가 아닌,
이제는 어른이 된 준식으로.
그리고, 어쩌면 나도 변하고 있는 걸까.
조용히, 아주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