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정이 사랑이라면, 망설이지 않을게
데이트가 끝나고
신림역 근처 좁은 골목을 걷는다.
조금 쌀쌀한 밤공기.
은정은 가디건을 여미고,
준식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녀와 나란히 걷는다.
말없이 걸었지만
준식의 머릿속은 시끄러웠다.
서로의 손을 처음 잡았던 오늘.
스크린보다 그녀의 숨결이 더 생생했던 순간.
그러나—
머릿속에 맴도는 건
노트 속 이름 하나였다.
"은정아."
"응?"
잠시 멈춘 걸음.
가로등 아래,
준식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사람,
잊었어?”
은정은 대답하지 못했다.
순간,
심장이 움찔했다.
"대희 말이야."
준식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내가 바보처럼
그 노트에 적힌 말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봐."
은정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미안해,
정리했다며 다신 안 묻기로 했는데…
근데 오늘 너랑 같이 있는 이 시간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불안해졌어.
혹시—
그 사람 그림자 안에 내가 있는 거면 어쩌지, 하고."
은정은 그의 손을 잡았다.
가늘고 따뜻하게 말한다.
“잊지 못한 게 아니라,
내 일부였어.
근데 준식아,
너랑 있으면서 처음으로…
그걸 내 안에서 밀어내고 싶어졌어.”
“지금,
여기 너랑 있는 이 시간이
나한테 더 진짜야.”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
조용한 모텔.
작은 방.
은색 벽지.
차가운 바닥에 놓인 두 사람의 신발.
준식은 가만히 은정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그녀의 눈을 바라본다.
“괜찮아?”
“응.
오늘,
너랑 가까워지고 싶어서.”
불이 꺼진다.
천천히 몸이 닿는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입술이 닿고,
손이 스치고,
서로의 체온이 겹쳐지며
이건 확실히 확인이었다.
우리가 지금,
같은 감정 안에 있다는 것.
상처 위에 새살이 돋듯,
우리도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