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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Apr 17. 2023

시칠리아 골목여행


문득 돌아보면 시칠리아에서의 시간이 꿈처럼 느껴진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시라쿠사의 한 골목에 우리 집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그리운 것은 평범한 골목에서 만나는 일상의 장면들이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담긴 건물들, 시칠리아의 강렬한 햇살을 머금고 생기를 뿜어내는 식물들, 도도하게 걸어가는 길고양이,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듯 요란스럽게 인사하는 이웃들, 좁은 골목에 작은 테이블에 앉아 몇 시간이고 앉아서 사람을 구경하는 할아버지들. 창문 밖으로 이불을 널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쳐서 둘 다 씽긋 웃었던 순간.



나는 단골이 된 동네 카페에서 길가의 작은 테이블에 앉아 이런 골목의 삶을 관찰했다. 어떤 날은 일기를 썼고, 종종은 오늘은 무슨 아란치니를 먹을까 고민도 하고(피스타치오 아란치니 아니면 라구 아란치니 중에 고민), 옆 테이블에서 신나게 수다를 떠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이런 동네에 작은 집을 사서 소박하게, 조금 외롭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상상해보기도 하고. 이번 주말 장날에는 어떤 과일이 나올까 기대하며 장보기 리스트를 만드는 일도 나에게는 다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었다.


시칠리아에서의 한달살기가 나에게 남긴 것은 나와는 다른 리듬의 일상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이다. 따뜻한 햇살이 오래 머물고, 사람들은 지루함과 느림의 사이를 오가고,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수다와 웃음이 삶의 우선순위인 그런 아날로그적인 삶. 나는 그 삶이 꿈같은 것이 아니라 손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곳에 다시 갈지도, 혹은 가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런 삶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내 일상에 쉼표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시칠리아의 시간을 떠올린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안정이 되고 숨을 고를 수 있다.


그곳에서의 시간이 내 삶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 마음속에 따뜻한 한 줌의 장면을 얻었다. 시칠리아를 만나고 나서 나에게는 언제든 다시 가고 싶은 그런 따뜻한 곳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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