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총을 들었다
몇 주 전부터 미국의 안보국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침공할 준비를 마쳤다는 정보를 공개했을 때,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은 그랬다. 처참한 전쟁의 모습.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러시아 군대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우크라이나의 도시를 생각했다. 타오르는 불길, 끊이지 않는 총성 속에서의 도움을 외치는 사람들.
지난 목요일, 그렇게 전쟁은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숨죽이고 계속해서 뉴스를 살핀다. 인터넷으로 한 한국 매체의 뉴스 영상을 보는데, 휴전 중인 국가의 시민으로서 남의 일 같지 않은 이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응원하는 댓글이 많이 보였다. 그 사이에서 내 눈길을 끈 짧은 글이 있었다.
"힘이 없으면 소중한 걸 지킬 수 없지."
소중한 걸 지키려는 힘이 없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는 말이었다. 왠지 살갗이 베인 것처럼 아프게 다가왔다.
군사기지를 넘어서는 공격하지 않겠다던 푸틴의 말을 뒤로하고, 수도 키예프를 비롯한 여러 도시의 주거 지역에 탱크와 미사일 공격이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놀라운 것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용감한 대응이었다.
남녀노소 시민들은 줄지어 시민군으로 나서서, 총을 받아 들고 훈련을 받고,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탱크와 러시아 군을 향해 던질 화염병 제조를 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fhD-ZGChr8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시민군으로 지원해서 무기를 받으려고 줄을 서있는 중이에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통제와 장악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니, 우리에겐 다른 방법이 없어요, 직접 싸우는 수밖에요. 제가 사랑하는 모든 게 무너지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저는 그냥 평범한 시민이고, 전쟁 같은 걸 지지하지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제가 여기 나온 이유는 간단해요. 집에서 폭탄이 날아오길 기다리는 것보다는 밖에 나와서 반격할 수 있는 무엇이라도 하려고요. 우리가 아니면 누가 우리나라를 지켜주겠어요?"
"밖에서 폭격음이 들려왔을 때, 저는 ‘이제 준비가 되었다'라고 결심을 했어요. 저는 건강한 성인 여성이고, 이게 제 의무라고 생각해요."
이들의 눈에는 무엇인가가 있다. 홍콩의 시위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보였던 것과도 같은 눈빛이다. 두렵지만 용기를 내는 사람들에게 있는 그런 빛. 두려움과 걱정이 애써 다독이고, 용기와 희망, 책임감을 그 위에 덮어 낸,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 눈빛에 담겨있다.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미국 워싱턴의 긴급 피신 제안을 거절했다. 대통령이라는 위치에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이었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대통령이 전쟁 시작과 동시에 특수 공수부대의 보호를 받으며 해외로 피신하곤 한다.), 그는 오히려 이렇게 답했다.
내가 필요한 건 탄약이지, 피신용 헬리콥터가 아닙니다.
그는 끝까지 수도에 남아서, 시민들과 함께 나라를 지키겠다고 했다.
수적으로도 군사력으로도 모두 열세에 있음에도 이 용감한 사람들은 나흘째 수도를 지켜내고 있다. 얼마나 더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이 혼란의 끝에 이들은 어디에 서있을까. 이제 시작일 뿐이라서, 마지막을 생각하는 건 너무 멀고 아득하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간신히 버티고 있는 이 용감한 이들이 내일도 무사하기를 기도하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