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취향은 아님
첫 딸을 낳고 나서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아기에 별 감정이 없던 사람도 자기 자식이 생기면 달라지던데,
내 남편은 변화라는 게 없었다.
아직 어렸던 처조카를 봐도 ‘아기가 있구나’하는 표정이더니,
자기 딸이 태어나도 여전히 ‘우리 집에도 아기가 있네’하는 표정이었다.
아기가 조금 크자 그 표정은 ‘신기하네’가 됐다.가만히 잘 놀고 있는 딸을 괜히 건드리거나 주물떡 거렸다.
그러면 딸은 울음을 터트렸고, 나는 화를 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무관심한 건 아니다.
두 살이 넘어가면서 둘이서만 등산도 가기도 했다.
(등산이라고 해도 딸이 그냥 아빠한테 업혀 가는 거다)
당시 둘째 임신 중이라 따라가지 못했던 나는,
인증사진이 보고 배가 땡길 정도로 웃었다.정말 무표정한 표정의 두 사람이 찍혀있었기 때문이다.
가면서 무슨 얘기했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등산하는 내내 대화를 안 했단다.
아기랑 대화할 줄 모른다나.
그래도 유치원 들어가니까 대화는 좀 된다고 좋아했는데,
초딩 고학년으로 올라가니
단어선택이 희한하다고 놀란다.
아빠는 여전히 딸을 대하는 게 어설프고 서툰데,
딸이 자라서 이제는 아빠에게 맞춘다.
두 사람이 이렇다 보니 보통의 어린 딸이 하는 레퍼토리,
“나는 커서 아빠랑 결혼할 거야!”
는 없었다.
유치원 입학하자마자 저 문장의 이름자리는 반친구로 대체됐다.
아빠가 이상형이 시절이 한 번도 없었다는 얘기다.
남편은 매우 서운해한다.
그동안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딸에게 아빠가 이상형이길 바라는 건 좀 무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