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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Jul 27. 2023

- 문지기 -

커피 프린세스를 맞이하며

매주 들르는 도서관의 출입문은 아주 무거운 강화유리문이다. 무겁다 보니 보통 엄마인 내가 유리문을 열고 아이들이 나올 때까지 잡고 서 있다. 엄마가 유리문을 잡고 기다리는데, 아이들은 천천히 걸어오더니 결국 열린 문 앞에 멈춰 서서는 갑자기 책을 확인하는 둥 딴짓까지 했다. 화가 난 나는 그대로 아이들을 도서관 밖으로 끌고 나와 혼을 냈다.

엄마가 문을 잡고 있으면 어서 나와서 문을 같이 잡아 주던지, 아니면 빨리 나와서 문을 닫을 수 있도록 해야지, 어째서 엄마가 문을 계속 잡고 있도록 만드느냐며 야단을 쳤다. 생활 속 기본 예의가 없는 건 참을 수가 없다.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마다 가르쳤다.

도서관이든 약국이든 가게든, 우리가 들고 나는 문은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공유하게 되는 공간이다. 나를 따라 누가 들어오기도,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뒤를 따라가기도 한다. 혼자라도 내가 출입하려면 열고 닫아야 하는 문이지만 함께 이용하려면 배려가 필요하고, 이 배려가 기본 예의다.

 문 잡아주기는 아주 작은 일이다. 내가 뒤따라 나갈 때 상대가 문을 계속 잡아주고 있었다면, 가벼운 목례와 인사를 건넬 수 있다. 또는 인사 대신 문 손잡이를 건네어 받아도 된다. 아주 작은 행동이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먼저 [당신이 문을 잡아줘서 고마워요]를 건네면, 상대가 [아 내가 좋은 일을 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 배려가 없으면 기분이 불쾌해진다.

 어느 날 커피를 한 손에 든 젊은 여성이 내가 열어준 문으로 도도히 걸어 들어갔다. 문을 잡아주려는 행동은커녕 작은 눈 마주침 조차도 없었다. 말 그대로 몸만 쏙 들어가 버렸다. 순간 나는 내가 공주님을 맞이한 문지기가 된 줄 알았다. 밀어야 하는 문이라 상대가 부딪힐까 배려하며 열었는데, 이 배려가 무색하게 시종이 된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어른이 하나하나 세세히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다 큰 어른은 안 된다. 이건 그냥 무례한 사람이다. 평소라면 뭐라고 말이라도 했을 텐데 조용한 도서관이라 별말 없이 돌아섰다. 음료 반입이 안 되는 도서관에 등장한 커피 프린세스의 고고한 표정이 떠올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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