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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Aug 07. 2020

네가 나를 잊고 나서야, 이별이 왔다

아 이쯤이면 네가 괜찮아졌겠다. 어느 태연한 오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채만 했을 그리움이, 폭포 같은 기억이, 모두 산 아래로 흘러갔겠다.


그러면 이제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잠들 수 있겠다.


나는 첫사랑처럼 나를 바라보는 네 눈동자가 너무 뜨겁고 투명해서 종종 부담스러웠다. 


너의 순정이, 나에게는 한없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더는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고 이별했다.


분명히 사랑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랑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어져버려서.


나를 열심히 사랑해주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다른 온도를 겪고 있는 건 우습지만 괴로운 일이었다.


나는 노력하다가, 애쓰다가 너를 버렸다.


부디 너를 너만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라는 마지막 말은 나의 축복 같은 당부였다.


나를 원망하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을, 많은 감정을 소모하지 않기를.


관계를 훌훌 털고 어서 안온해지기를.


그래서 꼭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너는 군소리 없이 버려져서는 숲에 혼자 떨어진 도토리처럼 조용히 울다가, 꿈이면 나를 찾아와서 원망하고 갔다.


그 때 네가 앓던 마음만큼이나 뜨겁게 나를 다녀갔다.


그 꿈에서 깨어나면 나는 눈물이 났다. 하루 종일 먹먹해서 밥이 먹히질 않았다.


내가 너에게 준 상처가 내게도 버거워서, 너를 떠올리면 사랑보다 죄책감이 앞서서, 도무지 행복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이쯤이면 너도 나를 잊었을까.


이별을 딛고 어디로든 가 있을까 싶어졌다.


누군가를 잊기에 충분한 시간이 흐른 것이다.


네가 나를 잊어줘서 감사해졌다. 그제야 내게도 평화가 왔다.


비로소 나도 너를, 이제는 추억할 수 있게 되리라 희망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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