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동기는 역시 한국을 떠나 먼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은 나의 꿈 때문이었다.
일단 계나와 또라이의 첫 만남이 인상적이었다.
초면에 반말을 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친해지는 것
현실에서 저런 식으로 대화하면 관계가 긍정적으로
형성될까?
누군가 내게 저 똘갱이처럼 다가오면 난 어떻게
대응할까?
초면의 어떤 어색함은 사실 불필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려는 인간의 습성도
이 영화는 행복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한다.
계나는 말한다.
행복은 과대평가된 단어 같아.
나는 배고프고 춥지만 않으면 좋아.
나한테는 그게 행복이야.
똘갱이는 말한다.
고생해도 이런데 살면서 고생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 님께서 원하시는 행복이 뭔가요
내일이나 내년 말고 10년 뒤도 말고
당장 이 순간에 원하는 행복.
이 말을 한 강사가 죽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리고 고시생도 죽었다.
나는 이 둘의 죽음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인생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고시생은 뒤에 있는 행복을 위해 참고 참다가
죽음에 이르렀고.
강사는 당장의 순간의 행복을 찾고 원하다가
죽음에 이르렀다.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당장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되려 너무 위험한 일이 아닐까.
할머니도 평생 참고 기다리다가 돌아가셨잖아.
전적으로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동의한다.
유한하고 불완전하며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지금 당장의 행복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행복을 위한 도피도 괜찮다는 것.
도망간 곳에 낙원은 없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