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 - 4탄 | 모바일 청첩장이 있잖아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면, 종이 청첩장이 꼭 필요할까?
모바일 청첩장에 더 많은 정보와 사진들이 있는데 버려질 종이 청첩장을 애써 만드는 이유가 궁금했다. 청첩장 에피소드 1탄에 쓴 것처럼,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종이 청첩장은 어떤 '예의'나 '형식'인 것 같다. 행사에 소중한 이를 초대하는 사람의 예의를 표현하는 수단 또는 초대하는 주체가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형식.
예의나 형식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 쓰임이 다했다면 서서히 없어져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과감하게 종이 청첩장을 제작하지 않기로 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 분이라면 궁금할 것이다.
종이 청첩장을 만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간략하게 답하자면, 별일 없었다.
다행히 나의 부모님께서는 종이 첩첩장을 만들지 않아도 되냐는 질문에 없어도 괜찮다고 하셨다. (돌이켜보면 나의 부모님은 내 결혼식에 대해 어떠한 의견도 제시하지 않으신 것 같다. 감사합니다.)
류의 부모님께서는 '그래도(모바일 청첩장이 있어도)'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래도'는 류의 부모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친척들이나 소중한 분들께 아들의 결혼 소식을 알리면서 종이 청첩장을 드리지 않고 모바일 청첩장만 드리는 것이 '카톡으로 띡-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되실 수 있으니까.
몇 장이 필요하신지 여쭈었더니 40장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포털에 '청첩장'을 검색해 소량으로 제작해 주는 업체를 찾아 만들었다. 가격은 49,000원이었다. 내 부모님께는 종이 청첩장의 존재도 알리지 않았다. 철저하게 류의 부모님께만 보내드렸다.
회사에 결혼 소식을 알리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종이 청첩장이 없어도 괜찮을지 궁금한 분들이 계실 수도 있겠다.
물론 없어도 괜찮다.
내가 특이한 경우일 수 있겠지만, 결혼식에 회사 동료들을 아무도 초대하지 못했다. 소규모로 기획했기 때문에 참석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적이어서 친구들 중에도 일부만 초대할 수 있었다. 동료들 중 누구는 초대하고 누구는 초대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아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아무도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꽤 오래 다닌 회사지만 어쩔 수 없었고, 이것이 동료들을 위한 배려(주말에 푹 쉬실 수 있도록)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니 회사에 종이 청첩장을 돌릴 일도 없었다.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를 만들 땐 미리 '환경 보호를 위해 종이 청첩장을 만들지 않았다.'라고 알렸다. 친구들은 내 가치관과 신념을 잘 알고 있기에 오히려 '너답다.'라고 하기도 했다. 부정적인 의견을 표하는 친구는 (당연히) 없었지만, 평소 청첩장을 수집한다며 아쉬워하는 친구가 딱 한 명 있기는 했다. (미안해..)
청첩장을 주기 위해 만나는 자리에선 평소처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했다. 종이 청첩장이 없어 이 시간의 밀도나 행복이 낮아진다고 느낀 적은 없다.
결혼 준비뿐만 아니라 일상의 어떤 부분들은 '하고 싶어서' 또는 '해야 하니까'의 영역 밖에 있는 것 같다. '남들이 하니까' 하는 것들이다.
많은 커플들이 종이 청첩장을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안다. 거기서 기쁨을 얻는다는 것도.
하지만 지구와 인류 생존(?)의 측면에서도 종이 청첩장을 제작하지 않는 방향으로 문화가 바뀌면 어떨까? 한 해에 만들어지는 청첩장이 산을 이룰 텐데, 이만큼의 지구를 아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우리에겐 더 친절한 모바일 청첩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