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꾼의 도구상자 03
줄자를 4개나 샀다. 빨간색은 매워 보이고 노란색은 순해 보인다. 흰색은 때가 타니까 검은색도 샀고, 그것만 들고 다닌다. 나머진 어떻게 했냐고? 내 방 타공 팬에 주렁주렁 매달린 채 사용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패턴 디자인을 실물 사이즈로 하거나 제품에 사용하는 부자재의 사이즈를 결정해야 하는 입장에서 인터넷 구매를 하든 시장에서 부자재를 직접 보고 샘플을 골라오든 실 사이즈를 가늠하거나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도움이 많이 된다. 애석하게도 나는 눈대중으로 크기를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하지만 상황에 맞는 부자재 선정과 부자재 공급이 어려울 경우 대처할 것을 찾아내는 과정,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과정 등에 사물의 실제 크기를 확인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그래서 줄자는 외출할 때마다 곁에 있다. 명함을 놓고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줄자는 가지고 다닌다. 거래를 하던 곳에서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 명함보다는 줄자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샘플을 만들거나 패턴을 제작하고, 샘플을 새로 만드는 경우에도 이런 오차범위를 줄여나가는 것은 지출을 줄이는 것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스왓치라고 부르는 원단 샘플과 실물 크기를 확인하는 도구 그리고 메모장은 필수다.
샘플을 만들 땐 변수를 가능한 많이 줄여놔야 다음 샘플을 만들 때 수정사항이 바로바로 나온다. 샘플비 또한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
이 줄자는 의류업에 종사 중인 친구 추천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키링 줄자는 많지만 사용하다 보면 늘어나는 제품이 많아 치수 확인이 불확실해지거나, 넣었다 뺏다 하는 동안 고장이 나서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다이소나 오피스 디포 같은 곳에서 판매한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종합상가에 들렀다가 꽤 많은 곳에서 판매하길래 구매했다. 그 많은 상가에서도 돌아다니는 곳마다 가격이 다 다르다. 제일 싸게 구매한 게 2000원인가 1500원인가 그랬다. 어쨌거나 제일 많이 부른 곳도 3000원은 안 넘었다.
1년 정도 사용하는 기간 동안 이 줄자의 덕을 톡톡히 봤다. 눈에 익지 않는 이상 7미리와 5미리 웨빙 끈, 고무 줄과 이중 고무줄 등 두께 차이가 약간씩 밖에 나지 않는 줄과 그 줄이 들어갈 하도메 등을 고르는 일, 필요한 원단의 사이즈를 확인하는 일등 꽤나 많은 곳에서 사용할 일이 생겼었고, 이미 그 값은 다 한 것 같다.
실제로 독일에서 온 친구인지, 독일 이름을 가진 중국인 친구인지, 독일인인 척하는 중국인 친구인진 알 수 없지만 돈값은 충분히 하는 훌륭한 도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