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꾼의 도구상자 03
전에 일하던 곳에선 나사에서 만든 모터를 단 블렌더를 사용했었다. 무슨 상관이냐고? 아무 상관없다.
나사에서 지갑을 만들었는 진 나도 잘 모른다. 마침 필요하던 천 지갑에 나사 로고가 눈에 띄었을 뿐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정부기관이 이렇게 멋들어져도 되는 걸까? 나는 아직 국정원이라고 적힌 지갑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없길 바라본다.
천 지갑들이 다 그렇지만 정말 다 그렇게 생겼다. 이 제품의 특별한 점은 현금 넣는 칸은 엄청 크고 카드 칸은 숨겨진 칸 빼면 한 곳이다. 우주에선 무조건 현찰거래하는 거다. 현금 넣는 칸은 원화 사이즈가 아니다. 달러 용인가 싶다가 달러를 본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쩌면 중국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위안화 사이즈로 몰래 바꿔놓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실이라면 기축통화에 대한 중국의 야망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우주 분실을 우려한 혁대용 키링도 있다. 제품의 설계 역시 우주인의 관점으로 했다.(사용자 시점에서 제품을 봐야 한다) 사람들이 괜히 나사 나사 하는 게 아니다.
동전도 넣을 수 있는데 뭔가 우주적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역시 나사가 만들면 다른 것 같다.(나사가 만든 게 아니다) 뭔가 우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택배도 우주에서 온 것 같았다. 빅뱅이론에서 틈만 나면 우주비행 시절 이야기를 하던 하워드의 마음을 이해해버렸다. 이건 나사의 냄새를 맡아본 사람만 알 수 있다. 동생 하나가 형은 나사가 빠진 것 같다고 했었다. 이 역시 우주적 관점에선 별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