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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장 Dec 02. 2022

프로젝트 안암(安岩)

#17. 월동(越冬)

1. 겨울


  코로나 이슈로 작년 겨울은 이 동네의 겨울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다. 길에 사람이 없는 게 코로나 때문인지 계절 때문인지 구분이 안되었기 때문. 당장 이번 주부터(11월 30일) 영하 9도까지 떨어지니, 확실하게 방문객이 줄었다. 인근 사장님들에 따르면 환절기마다 방문객이 급감한다고. 확실히 지난 주말 저녁부터 온도가 낮아지기 시작하니 매출이 줄기 시작했고, 12월 1일인 오늘은 저녁 영업시간에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손님이 적다. 조금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봄과 가을만큼은 아니겠지 싶다. 누가 이 추운 날씨에 안국을 오겠나.



2. 행복 관여도


 

  사장이 되고 나니 약간 달라지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타인의 행복에 나의 관여도가 커질 수 있음을 알게 되는 것. 직원일 때 나는 여러 직원 중 한 명이지만, 사장일 때 나는 한 명뿐인 사장이고, 그 차이가 타인에게 행하는 행동에 대한 무게를 달리한다. 이 작은 국밥집에서 그렇게 작은 집단을 구성하고 있음에도, 타인의 시간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하는 내 결정은 그 타인에게 결코 작지 않다. 어떤 사람에 대한 나의 결정은 결정에 관계된 사람의 양의 차이일 뿐, 무게의 차이는 수많은 직원을 둔 회장님들과 다르지 않다는 말. 그렇기에 나의 비즈니스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 그리고 우리 직원이 좀 덜 불행할 수 있는 방법과 나의 행복의 교집합을 찾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고, 그 말인즉슨 내가 지금껏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가치관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는 뜻.

  "시대정신"이라고 부를 만한 변화가 있다면, 지금껏 우리가 지나온 시간에서 억눌러온 것들이 솔직해졌다는 것. 나의 능력 없는 시간을 미래 가치로 치환하기 위해 포기해온 것들, 당연히 포기해야 할 것들을 포기하지 않는 것. 어쩔 수 없던 것들에 그게 어쩔 수 없는 건 기업가의 배부름 욕심 때문이라고 말하는 걸 당연시하는 것.

  자신이 가진 "시간"이라는 자산의 가치를 인지한 Z세대의 요구를 돈과 "덜 불행할" 방법으로 치환해 줄 수 있는 미래산업들은 방법을 찾아내지만,  플랫폼 규모에 따라 제한되는 이익, 큰 고정비에 따라 늘어나지 않는 이익규모, 매출이 늘어날수록 커지는 변동비를 가진 외식산업 시장은 이제 더 이상 누구에게도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다. 성장 가능성과 미래를 위한 투자로 사용되던 노동시간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산업에 종사하는 나는 어떻게 나와 일하는 사람을 아낄 수 있을까.




3. 노동자

  사장은 일반 노동자의 개념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내가 불리할 땐 동료로서 이해해야 하고, 직원들이 유리할 땐 사장으로 책임져줘야 한다. 언제나 나에게 억울하지만, 그 균형을 잘 지켜야 타인의 시간을 지켜낼 수 있다. 나를 고용했던 사장님들과 나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그들의 행동이 십분 이해되기도,  어떤 현명함을 지녔는지도 알겠기에 복기해보곤 한다. 그렇다고 그들과 다른 성향을 가진 내가 같은 답을 내릴 필요는 없다.

현재의 내가 내린 답은 노동자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할 것.


 "잘해주려고" 노력하는 건 수직적 관계에서의 답이다.
같은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노력은 수평적 관계에서 답을 구하는 형태로 확인하는 것.
 책임은 나눠질 수 없지만 내가 내린 답을 믿고 따라줄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그만큼의 설득력을 가지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
나의 삶은 이곳이 끝이 아니므로,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나는 어디서든 나로 있을 수 있다.



4. 연말


  그래서 한 해의 마지막 날이 가진 의미 역시 새로운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 내게 연말은 그저 바쁜 시기였다. 사람들의 약속이 많아지는 시기가 되면 그 약속의 공간에서 일하는 우리는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가 된다. 연말은 다음 해의 초를 기다리며 버티는 무지막지한 시간이고, 그래서 남들만큼 감성적으로 느끼거나 바쁘게 사람들을 만난다는 개념이 없다. 그저 빠르게 지나가길 바랬을 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건 맞는 걸까? 이혼율 높은 직업의 순위권에 있는 요리사라는 직업은 이렇게 사는 게 어쩔 수 없다는 게 괜찮은 건가? 내 또래의 요리사들의 어쩔 수 없지, 나는 요리산데. 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이되는 게 괜찮은가?

나는 불현듯 이 어쩔 수 없음은 결코 요리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끼리만 공유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만 알고 있는 비밀이라면, 왜 새로운 종사자가 늘지 않는가?


  내 동료들이 일반 회사원과 연애를 할 수 없던 이유, 연락이 닿질 않아 헤어짐이 당연했던 이유. 그 모든 것에 답을 찾을 순 없지만 그걸 작게나마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데, 왜 모른 척하고 있는가? 에 대한 질문. 나와 내 동료가 하루에 200명 남짓의 손님을 받아넘기면서 해야 하는 희생은 급여를 제공하기에 너무 당연하게 느끼거나, 그 한계점을 너무 사장 편한 대로 해석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안암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크지 않은 규모에, 크지 않은 수익의 음식점이 지금 시대정신에 치환해 줄 수 있는 가치는 많지 않다. 그래도 나는 앞으로 안암을 거쳐갈 사람들에게 남았으면 하는 것들을 고민하며 문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나뿐 아닌 그 사람들에게 안암에서의 시간이 후회되지 않길 바란다. 일뿐이었던 시간보단 좋았던 시간이길 바란다. 그래서 우린 연말에 휴가를 간다. 영업일수에 쩔쩔매는 사장이지만, 나만큼이나 내 주변인들도 행복하길 바란다.

한 해의 마지막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낼 수 있기를, 한해의 첫날은 가족들과 함께하기를, 모든 어쩔 수 없음을 해결할 순 없겠지만, 언젠가 그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사장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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