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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Jan 02. 2021

내 마음이 속삭였다

무심코, 특별히 바라보기

 언제부터인가 화분을 집에 들이기 시작했다. 큰 것, 작은 것 기회가 되는 데로 집으로 들였다. 물론 녀석들을 어떻게 키우는지도 모르고 배울 생각도 없이 성실하게 물만 줬다. 그랬더니 어떤 녀석은 꼴깍꼴깍 물을 뱉어내 마룻바닥을 한강으로 만들어버렸고, 어떤 녀석들은 꿀꺽꿀꺽 잘 받아먹어 더 푸른 입사귀로 의젓한 자태를 뽐냈다.


 오래지 않아 나는 알았다. 1주일에 한 번씩 물을 먹어야 건강해지는 녀석이 있고, 1달에 한 번 물을 먹어야 건강해지는 녀석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식한 주인을 만나 일찍 세상을 떠난 녀석도 있고, 주인이 물주는 대로 익숙해져 13년째 같이 사는 녀석도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녀석이 고무나무다. 식물과 대화를 할 만큼의 감수성을 갖고 있지는 않아, 고무나무와 대화를 한 적은 없지만 녀석은 나의 역사를 다 보았을 것이다.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하고, 행복해했던 나의  역사를. 그래서 다른 식물들보다 조금 더 애정을 갖고 바라본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이 방학을 하며 교실에서 키우던 작은 화분을 가져왔다. 그런데 그 녀석들까지 챙겨줄  여유가 없어 방치했더니 시들시들하다가 그만 숨져버렸다. 미안해서 잘 거두어주고, 빈 화분에 생존능력이 강한 금전수 가지를 잘라 심어주었다. 금전수는 참 신기하다. 잘라서 땅에 세워만 둬도 참 잘 자란다. 그래서 숨져버린 식물이 있던 빈 화분에는 어김없이 금전수를 잘라 꽂아둔다. 그럼 어느 날 문득 보아도 잘 자라고 있다. 신기하고 기특한 녀석이다.


 12월 31일, 크리스마스트리를 정리해 창고에 넣었다. 11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 장식하고, 누릴 만큼 누렸기에 미련이 없다. 그런데 크리스마스트리를 정리해 넣으면서 문득 '이제 무엇을 기다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감싼 전구의 반짝임을 보며, '지금 여기도 특별하다'는 말없는 위로를 받았다. 그렇다고 1월에도 트리를 두고 보는 것은, 유행 지난 옷을 10년째 걸어놓은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다음 크리스마스를 더 설레게 기다릴 수 있는 이유도 있고.

 

 이제 무엇을 기다리고 무엇을 봐야 할까?
 그때 화분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겨울 주인의 무관심으로 가지는 제 멋대로 뻗어 있고, 어떤 가지들은 쓰러지기 직전, 어떤 식물은 시들어 죽으려고 했다. 얼른 시든 부분을 잘라주고, 모자란 흙을 채워줬으며, 벌어진 가지들을 끈으로 모아 묶어주었다. 작은 관심이었지만, 어느새 식물들은 사랑을 충분히 받은 모습으로 단장되어 있었다.


 "봄을 기다리자."

 내 마음이 속삭였다. 봄을 기다리자고.


 이제 겨울 시작인데 벌써 봄을 기다리는 것은 이른 감이 아주 많은 일이었지만, 나는 뭐든 빨리 준비하고 기다리는 편이라 익숙하다. 기다린 적 없는 겨울이라, 어서어서 지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따뜻한 봄을 기다리련다.


봄은 설렌다. 가슴 벅차다. 꼭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경쾌한 피아노 음이 울려 퍼지며,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그리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 같다.

다시.


푸른 식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봄을 기다린다.

많이 이르지만 그래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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