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 아카데미에서 출간된 '지성과 감성의 협상기술'*이라는 책을 보면 FTS란 개념이 나온다. FTS는 협상자의 체면손상 민감도라고 하는데, Face, Threat, Sensitivity를 말한다. 이 개념은 본인이 당한 체면 손상에 대해 적대적인 반응을 나타낼 가능성을 말하는데, 상대의 모욕적인 언사, 공격적인 태도, 무시하는 말투 등에 얼마나 쉽게 Mental이 흔들리는지, 얼마나 쉽게 이성을 잃고 감정적으로 변하는지를 나타낸다.
* 리 L. 톰슨 지음, 김성환 김중근 홍석우 옮김'
책 본문 101페이지를 보면, '고용협상에서 구직자의 FTS가 높다면 그가 Win-win 거래를 성공시킬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표현이 나온다. 어렵다. 이건 또 무슨 어려운 얘기인가?
면접 유형 중 압박면접이라는 것이 있다. 피면접자의 약점을 파고 들어 집요하게 Stress를 주고, 피면접자의 Stress 내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피면접자의 자소서에 기록되어 있는 약점을 파고들어 기분 상하게 하거나 어떤 사안에 대해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하지 못한 내용의 틈새를 파고 들어 상대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다. 피면접자를 조금씩 약올려 흥분되게 만들기도 하고, 피면접자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승부욕을 자극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된다.
면접관들은 도대체 왜 이런 압박면접을 할까? 이는 피면접자들의 Face, Threat, Sensitivity를 확인하기 위한 Process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아름답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만 일어나는게 아니라 Stressful한 상황이 훨씬 더 자주 발생한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FTS가 높으면 상사의 Challenge에 쉽게 흥분하고, 회의 시간에 본인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하며, 관리자가 되면 별 것도 아닌 농담에 후배직원이 본인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직원과는 대화도, 업무 협의도, 업무 지시나 보고도 하기 어려워 지고, 이런 문제는 고스란히 조직이 떠안게 된다.
필자의 경우 20년 전이긴 하지만, 신입사원 공채 면접을 볼 때 이런 질문들을 받았다. '사법시험 준비를 2년이나 했는데, 1차 시험도 합격을 못했으면 머리가 나쁜거 아닌가요?', '지원자처럼 머리도 좋지 않은 사람을 우리 회사에서 채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특기가 피아노 연주인데, 직장 다니면서 피아노 연주 기술이 쓸모가 있나요? 쓸모도 없는 특기를 지금 자소서에 특기라고 쓰신 이유가 뭐죠?'
음 ~~ 요즘 같으면 인권위원회에 회부될만한 면접 질문들이다. 하지만 20여년 전만 해도 저런 질문들을 아무렇지 않게 면접관들이 피면접자들에게 했고, 이를 압박면접이라는 면접의 한 형태로 봐주기까지 했었다. 요즘은 인성 검사를 통해 성격의 극단성, 민감성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면접에서 저런 무지막지한 질문들은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필자의 경우 마침 사법시험 준비를 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려던 차였기에 '내가 머리가 좋지 않은가?' 자책하고 있었고, 얼마 전에는 집에 있던 낡은 피아노를 보고 '초등학교 6년 동안 열심히 배웠는데, 지금은 피아노 칠 일이 없네. 차라리 휴대하기 편한 기타 같은 악기를 배워뒀으면 MT가서라도 써먹었을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는 생각을 했던 차라 압박질문에 대해 FTS가 그닥 높지 않았고, 면접 답변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머리가 아주 좋은 것같진 않고요, 특기인 피아노도 그러고 보니 성인이 되고는 한 번도 쳐본 적이 없네요'라고 순순히 인정하고 말았다.
면접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나는 왜 이리 되는 일이 없을까'하고 신세한탄하며 당일 받은 면접비로 잘 마시지도 못하는 깡소주를 서러운 마음에 들이켰었다.
그런데 한달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는 면접 전형에 합격했다는 황당한 소식을 전했다. TV 드라마에서 보면 면접 합격 전화를 받고, 소리도 지르고, 미친듯이 거리를 뛰기도 하고, 심지어 엉엉 울기도 하던데, 필자는 '뭐지? 머리도 별로 안 좋고, 쓸데 없이 피아노 연주가 특기인 나를 왜 합격시켰지?'하고 며칠 동안 어안이 벙벙했었다.
물론, 질문이 그 두 가지가 전부가 아니긴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FTS가 그닥 높지 않아 압박면접을 펼친 면접관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았던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당시 같이 면접을 봤던 다섯 명 중 필자만 합격을 했었는데, 나머지 Spec이 화려한 친구들도 압박면접 질문에 당황하며 우왕좌왕하고, 살짝 흥분하는 친구도 있었으며, 심지어 얼굴이 벌개졌던 사람도 있었던 것같다. 어쨌건 그날의 면접은 필자에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단점만 부각되어 자괴감만 깊어진 상태에서 대기업 면접전형에 합격이라니 ....
그런데 막상 회사에 입사하고 보니, 필자처럼 무디고, 잘 웃어넘기는 사람도 자주 짜증나고, 흥분되는 일이 발생했고, 화나고, 기분 나쁜 일들도 하루에 수차례 발생했다. 상사에게 혼나고, 후배들이 대들고, 동기들은 은근히 경쟁한다고 견제하고. 화가 난 상사가 필자에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잠재적인 경쟁자가 필자의 Mental을 흔들기 위해 시비를 걸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의 회사 생활을 거치고서야 '이래서 압박 면접을 해서 인성이라는 것을 확인했던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런 압박면접이 요즘같은 인권이 중요시 되는 시대에 필요한 면접 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취준생들에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너무 예민하지 말고, 좀 무뎌져 보라고 권하고 싶다. FTS를 낮춰보라고. 그래야 하루 8시간씩 붙어 경쟁하고, 이해관계를 다투는 일터에서 정신 건강을 해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FTS가 선천적일까, 후천적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일까는 필자 역시 여전히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