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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Sep 19. 2022

8. 명절선물세트 팔기

브런치북_다시, 제주

제주에 재입도한 8월 한달이 지나고 바로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근심없이 황홀할 정도로 충만했던 한달이 지나고 본격적인 '제주에서 먹고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육지에서 제주행을 감행했을 때 저희 계획은 제주의 농수산물을 팔아보자 였습니다. 제 의견에 근심스런 얼굴로 남편은 물었었죠.

"유통은 돈이 있어야 돼. 우린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데 될까?"

"욕심 부리지 말고 작게 해보는 거지 뭐. 어쨌든 먹는건 실체가 있는 거니까 작게 남더라도 팔리긴 할꺼야."

당시 저는 보험회사를 그만둔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실체가 없는 무형의 물건을 파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제 적성에 얼마나 안 맞는 일인지를 통감했을 때라 그냥 심플하게 보여지는 것, 이왕이면 누구나 먹는것, 먹거리를 팔고 싶었습니다. 

제주에서의 유통일은 이미 경험이 있기도 했습니다. 10년전 남편을 통해 제주 갈치며 고등어, 한라봉, 흑돼지등을 육지에서 인터넷 지역카페를 통해 팔았었습니다. 그때는 남편이 제주 농가와 육가공 공장등을 방문해서 생물을 매입하고 제가 육지에서 인터넷을 통해 주문을 받아 전달하면 남편이 제주에서 택배로 보내주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아직 걷기도 전이었던 둘째를 돌보면서 하기에도 편했고 당시만 해도 지역 커뮤니티의 직거래 장터가 활성화되었을 때라 모든 거래는 선결제, 그것도 현금으로만 이루어졌기에 자고 일어나면 통장에 따박따박 돈이 쌓이던 때였습니다. 물론 나중에 남편과 정산하면서 원물값을 빼줄 때는 어찌나 허탈하던지 마치 쌩돈을 뺏긴 것마냥 그렇게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었습니다. 어쨌든 그때의 경험으로 제게 어느 정도 물건을 파는 소질이 있고, 무엇보다 현지에서 직접 초이스해서 보낼수 있다면 소비자와의 신뢰가 형성될 수 있겠다 생각되었고 무엇보다 신선하고 맛있는 제주의 식재료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아이템을 선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한달간의 캠핑같은 생활이 끝나고 육지 집도 정리되어 몇 되지 않는 살림살이들이 제주 집에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세탁기와 냉장고가 들어오고 tv가 설치되고 침대와 책상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더이상 음식이 상할 걱정도 해가 났을때 빨래를 말려야할 걱정도 없어졌지만 한편으론 주어진 편리함들이 조금 아쉽게도 느껴졌습니다. 가진 것이 점점 늘어날수록 욕심도 더 늘어날 것 같아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소유욕은 끝이 없어 가져도 가져도 허전하고 부족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지금 제 주변을 둘러보니 그때에 비해 이미 너무 많은 걸 가진 절 발견하고 있습니다. 

가진 것 없이 내려온 저희로서는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했기에 본격적인 추석선물세트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선물세트에 들어갈 아이템을 정하고 정해진 수산물과 흑돼지를 공급해줄 가공공장을 수소문했습니다. 건너건너 소개도 받고 인터넷 서칭을 통해 생산자와 연락도 해보고 방문해서 시설도 둘러보고 단가도 받았습니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시장에 가서 생선 파시는 분께 물어도 보구 동문시장의 정육점도 방문해 보았습니다. 아이템과 단가가 정해지자 브로슈어를 제작할 돈도, 시간도 없어 급한대로 이미지 파일만 만들어 주변에 카톡으로 전송했습니다. 역시 패키지를 제작할 돈도 시간도 없었기에 제주 시내에 있는 포장재 매장에 가서 규격에 맞는 기성품으로 골라 소량으로 구입해 왔습니다.

주변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살아보겠다고 제주까지 가서 해보려는 노력을 가상히 보고 도와주려는 마음들도 있었고 생선이나 고기는 다들 먹는 것이니 주변에 선물하기도 소개하기도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준비도 부족하고 갖춘 것도 없었지만, 첫 명절치고는 많은 양의 주문을 받았고 택배마감이 임박했던 마지막 일주일은 잠도 못자고 녹초가 될만큼 포장 작업을 해서 모두 택배로 보냈습니다. 구성과 패키지에 대한 아쉬움도 컸지만 첫술에 배부를수 없으니 다음 명절인 구정때까지는 모두 준비해보자 남편과 다짐했습니다.


선물세트 자체의 단가도 있고 판매된 갯수도 많아 이 정도면 대박인가 싶었지만, 정산을 마친 후의 수익은 놀랄만큼 크지 않았습니다. 영업을 도와준 가족과 친구들의 몫까지 나눴기 때문도 있었지만, 농산물 유통이란 게 마진률일 높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나마 명절 선물세트는 마진을 많이 붙인 것임에도 결산 후 남은 금액에선 허탈감이 들었습니다. 저나 남편은 이미 경험이 있었기에 모르지 않았음에도 아쉬움이 들었는데 주변사람들은 오죽했을까요? 결산 후 나눈 몫에 대해선 자료상 매입과 매출이 빤해 누굴 탓할 순 없었지만,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이익이 너무 적다 생각해서인지 결국 초기에 함께 했던 분들은 이후 모두 사업에서 떠났고 결국 남편과 저만 남았습니다.

유통이란 것이 소량으로는 답이 안 나오는 것이기에 주변에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성장하여 제주에서 기반을 잡고자 했던 것이 저희의 계획이었습니다. 물류창고도 있어야 하고, 패키지를 제작할 돈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판로가 있어야 했기에 함께 영업을 해주고 현지에서 저희가 물건소싱과 물류를 책임지는 구도로 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각자의 가정을 책임지고 있다보니 그만큼의 소득을 기대하기에는 서로가 가진게 너무 없었습니다. 함께하여 힘을 보태고 싶었지만 함께하기엔 갈 길이 너무 멀었습니다. 


육지보다 조금은 이른 택배마감을 치고 명절연휴까지 꿀같은 휴식이 주어졌습니다. 물론 명절 특수로 인한 택배물량의 증가로 종착지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시간들까지 마음 졸여야 하는 단계가 있었지만 일이 마무리되자 우리 가족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근처 섬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대한민국 최남단이라는 마라도에 가서 섬도 한바퀴 돌고 자장면도 먹고, 오는 길엔 한창 핫하다는 핑크뮬리를 찾아 고운 자태를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육지에 있었다면 가족, 친척들과 함께 떠들썩 했겠지만 제주에 산다는 핑게로 저희 가족만의 오붓한 여행으로 대신하는 명절이 그렇게 저물며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선물세트도 명절 반짝 특수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자 다음달은 또 뭘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다시 또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가진것 없이 떠난 이민살이는 그렇게 하루하루가 좌충우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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