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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Sep 19. 2022

7. 그해 여름

브런치북_다시, 제주

그 해 여름 7월 30일, 무더위가 한창이던 한여름에 저희는 떠났습니다. 

친정 부모님이 물려주신 낡은 무쏘차에 냄비와 텐트, 간단한 옷가지 등만 쑤셔넣고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를 태우고 목포까지 달렸습니다. 한여름의 뙤약볕이 썬팅이 벗겨진 낡은 차창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빼곡하게 실린 짐으로 뒷자리에 앉은 딸아이는 흘러내리는 짐들을 자꾸만 손으로 밀어내야 했습니다. 목포항에 가기전 경치 좋아보이는 곳이면 차를 세우고 내려 거닐기도 하고 배고 고프면 길가에 보이는 국숫집에 들어가 먹기도 했습니다. 에어컨을 켜도 땀이 줄줄 흐를만큼 더운 날씨였기에 목포에 도착했을때는 온몸이 땀에 절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동네 목욕탕에 들어가 간단한 샤워를 하고 밤배를 기다리며 목포에서 유명하다는 낙지도 먹고 시내도 거닐었습니다. 여행인지 이사인지 모를 목적에도 그저 우리 셋은 무엇이 그리 즐거웠는지 참 해맑았습니다. 


제주로 향하는 여객선은 여행객들로 꽉 찼고 우리는 예약한 3등실에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새벽 일출을 배 갑판에서 보고 8월 1일 아침 우리는 제주에 도착했습니다. 제주항에 내려 잠시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다 무턱대고 애월쪽으로 달렸습니다. 도심을 가로지르며 우리의 기억속 제주와 달라진 모습을 찾기도 하고 여전한 모습을 기억해 내기도 하며 남편과 저는 끊임없이 얘기를 나눴습니다. 

다시 찾은 제주는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거리에 나무와 꽃들, 야트막한 돌담과 찌르르찌르르 울어대던 매미소리, 새소리. 달리는 내내 남편과 저는 감탄만 했습니다. 이미 7년전 한번 살았던 제주였지만 그땐 제주시내였기도 했고 지금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온 때가 아니어서였는지 그때는 미처 몰랐던 아름다움들이었습니다. 

대책없이 온 터라 제주에서도 머물 곳이 없던 저희 가족은 무작정 금능해변으로 갔습니다. 금능 캠핑장이 무료라는 인터넷 정보만 보고 도착한 그곳은 코발트빛 바다와 고운 모래사장이 우리를 반겼습니다. 캠핑장에 짐을 풀고 땀을 줄줄 흘리며 가져온 텐트를 치고 간이 테이블까지 놓기 무섭게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닷물로 뛰어들었습니다. 낮에는 물놀이하고 밤에는 텐트에서 불편한 잠을 자고,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고 식수대에서 쌀을 씻고 양치를 하며 3박 4일동안 그렇게 세 가족은 노숙자처럼 지냈습니다.



한달전쯤 남편이 먼저 잠시 와서 둘러보고 계약을 해둔 집이 있긴 했지만 제주에 도착 당시에는 잔금이 없어그 집에 못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형부가 보증금을 빌려줘서 5일째, 우리는 드디어 계약했던 집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북적이던 바닷가에서 까맣게 타고 온 몸에 모래가 들러붙어 있던 지난 삼일간의 몸을 '집'이라는 곳에서 씻고 얇은 이불이지만 덮고 누웠을 때 저희는 항상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 안락함에 울컥했습니다. 조용한 중산간 그 집에 처음 들어갔던 그 밤, 남편과 저는 너무 행복해서 자는 아이를 두고 마당 한켠에 나와 맥주를 나눠 마시며 하늘의 별빛과 함께 두런두런 참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무작정 제주행'은 시작되었고, 그해 여름은 열살이 된 아이에게뿐 아니라 사십해를 넘게 살아온 저와 남편 모두에게도 최고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집만 있었지 살림살이며 가전제품도 없어 짐가방만 덩그러니 있던 그 곳에서 냉장고 대신 작은 아이스박스에 편의점에서 사온 얼음을 넣고 오일장에서 사온 배추 한포기로 김치를 담궈 보관하고, 수돗가에서 매일 세숫대야에 빨래를 넣고 발로 밟아 빤후 비틀어 짜서 옥상에 널었습니다. 물때 시간을 보고 동쪽 바다로 조개와 보말을 잡으러 갔고, 일몰시간을 체크한 후 서쪽바다로 달려 지는 해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비가 오면 주변에 있는 연꽃을 보고 나섰고, 매일 싱싱한 회와 고기, 나물로 차려지는 밥상은 더없이 만족스러웠습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할 파라솔을 펴고 서울 언니가 보내준 수조를 마당에 설치하여 아이들은 아침부터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동네 한바퀴를 산책하고 저녁이 되면 옥상에 올라가 밥을 먹고 돗자리를 깔고 누워 하늘의 별을 세었습니다.

최고의 시간을 보냈던 그 해 여름, 그 한달 동안 우리 부부는 깨달았습니다.


사는데 있어 필요한 건 참 많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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