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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Sep 19. 2022

5. 가족 아닌 가족

브런치북_다시, 제주

'이번달 생활비 아직 입금 안했더라. 오늘까지 계좌로 보내. '

'내가 너한테 무슨 빚졌냐. 아무리 그래도 너 나한테 너무하는거 아냐? '

'뭐가 너무해? 당신이랑 내가 왜 사는데? 얘들 땜에 사는 거잖아. 얘들이 그냥 커? 숨만 쉬어도 돈인데 절반씩 내자는게 뭐가 잘못됐어? 혼자만 내란 것도 아니고 내 몫은 냈으니 당신 몫 하라는 거잖아.'

'내가 안 내겠다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이런 걸 꼭 카톡으로 해야 해? 집에서 말로 하면 되지. 집에서는 본척도 안하면서 각방에. 이게 가족이냐?'

'우리가 왜 이러고 사는데?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벌써 잊었어?'

'언제까지 내 탓만 할래? 내가 어디 나가 죽어버릴까? 그러면 니 속이 편하겠냐?'


핸드폰의 액정을 두드리는 손끝에서 스파크가 튀듯 분노가 일었습니다. 매달 나가야하는 공과금과 이자, 두 아이에게 들어가는 교육비, 네 식구의 식비며 생활비등 그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하루하루가 버거워 제 인내심은 이미 오래전에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암담한 생활이 애초부터 누구로부터 비롯됐는지 벌써 잊은 건지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온몸이 달아 올랐습니다. 


필리핀에서 돌아와 전념했던 지하철 매장은 생각보다 형편없는 매출로 인해 오픈한지 세달만에 접어야 했습니다. 이후 백화점 행사가 잡히면 행사기간 동안 남편과 가서 온종일 김밥을 만들어 팔았고 그 행사도 뜸해지자 다시 좀더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매장으로 옮겨 그곳에서 한여름과 한겨울을 났습니다. 냉난방이 되지 않는 매장은 한여름엔 선풍기만으론 더위를 식힐수 없어 온몸에 쉰내가 날 정도로 땀범벅이 되었고 한겨울엔 전기히터만으로 추위를 녹일수 없어 내복 위에 네다섯겹의 옷을 껴입고도 모자라 모자와 마스크, 장갑까지 끼고 일을 했습니다. 유달리 추웠던 그해 겨울엔 설겆이후 벗어놓은 고무장갑 끝에 이내 고드름이 생겼습니다. 


그 매장 또한 저희 것이 아닌, 저희 사정이 딱해 편의를 봐주던 다른 분의 것이었기에 매장이 팔리면서 바로 나와야 했습니다. 몸서리가 쳐질 정도의 더위와 추위를 겪으며 정신없이 지내고 나니 정말 지하철에서 먹는 장사는 다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몸이 고된건 둘째치고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으니 그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제 이모 집에서 일년을 지낸 둘째는 이제 엄마 아빠와 살겠다며 집으로 오고 싶어했습니다. 언제까지 언니집에 맡길 수도 없어 저는 지하철 매장이 정리되는 대로 다른 일자리를 찾아 구인광고를 뒤졌지만 회사생활한지 10년이 넘은 마흔이 훌쩍 넘은 경단녀를 채용해줄 곳은 많지 않았습니다.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본 결과 저를 환대해준 곳은 두 곳, 기획 부동산과 보험회사였습니다. 


평소라면 그 두곳은 쳐다도 보지 않았을, 저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극단으로 몰리니 평소 안 좋게 생각했던 그곳이 달리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무어라 하건 그 긴 시간동안 아직도 건재한 걸 보면 사기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지인 중엔 그쪽 분야에서 나름 성공한듯 명품 옷을 입고 고급차를 몰며 호기롭게 밥과 술을 사던 이들도 있었기에 호기심도 생겼습니다. 

속는 셈치고 면접이나 보자며 찾아간 두곳 모두 입구에서부터 성의있게 환대해 주는 그 따뜻함에 먼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부드러운 조명과 넓은 사무실, 안내를 받고 들어간 모던한 미팀룸엔 안락한 의자가 놓여있었고 찻잔에 받쳐 내온 커피에서는 품위가 느껴졌습니다. 저는 실로 오랜만에 인간으로서 대접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지하철 매장에서 그 많은 불특정 다수의손님들을 상대하며 때로는 노숙자, 취객, 고압적인 지하철 공무원까지 상대해야 했던 지난날의 고단함을 위로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뒤이어 나타난 팀장들은 또 어쩜 그리도 화사한지 깔끔한 정장과 구두, 매끈한 화장과 멋스러운 머리 스타일로 일단 등장부터 분위기가 고상해지더니 이어진 대화에서는 세련된 말투와 온화한 미소로 저를 단박에 무장해제 시켜 버렸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지난 시간들을 진지하게 경청한 그들은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뎠느냐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통에 갑자기 제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해보겠다 했습니다. 예전처럼 정장입고 노트북 들고 카페에서 미팅하며 공부하고 자료를 설명하는 일만으로도 신이 나는데 돈도 많이 벌수 있다니 제 앞에 앉은 그녀들처럼 저도 이 고단한 삶을 끝내고 한번 멋지게 살아보리라 눈을 빛냈습니다. 그리고 참 열심히도 했습니다. 부동산도 금융도 뒤늦게 시작한 공부는 더디긴 했지만 재미가 있었습니다. 필리핀에서 다 팔아버려 없는 옷들도 조금씩 사들였습니다. 예쁜 구두도 사고 정장도 사고 짝퉁이지만 멋진 서류가방도 샀습니다.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울리며 출근하는 아침, 사무실이 있는 고층빌딩의 문을 통과할땐 자긍심으로 제 키가 한뼘 더 커지는 듯도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실전은 혹독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무형의 자산을 세일한다는 건 보통의 능력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주변인이 중요한데 저처럼 가진거 없이 쫄딱 망해 아무것도 없고 학연도 지연도 다 끊기고, 가족들에게까지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부동산과 금융은 높은 장벽이었습니다. 두 분야 모두 단시간에 될수 없는 많은 시간투자가 필요한 일이라 파악했지만 저에게는 그 긴 시간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친구와 언니, 형부를 만나 말도 제대로 꺼내보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온 날, 서러운 마음에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짧은 시간안에 정리하고 나오면서 역시 저와는 맞지 않는 길이었다 했습니다. 번 것도 없이 시간만 지난 채 옷장엔 새 옷만 쌓여 있었습니다. 

포기하고 나오는 길엔 언제나 후련함과 함께 공포가 뒤따랐습니다. 이제 또 무얼해서 먹고 살아야하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끊임없이 구직 사이트를 뒤지고 항상 무언가 일을 했지만 길은 보이지 않았고 그 끝에는 남편에 대한 원망만이 자리했습니다. 예전의 저는 남편 앞에서 대놓고 돈 얘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혼자 어찌해볼 수 없을땐 오랜 고민끝에 돌려서 말하는 쪽이었지만 이젠 거침없었습니다. 한달을 또 버텨야 한다는 공포가 오기를 불러일으켰고 어떻게든 남편에게서 생활비의 반을 받아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집념이 불타올랐습니다. 

돈 때문에 싸우는 시간이 많아지자 우리는 새로 이사한 집에서 각방을 썼고 아이들의 눈도 상관없이 최대한 서로를 피해다녔습니다. 서로 밥먹는 시간도 마주치는 동선도 최대한 피했으며 인기척도 듣기 싫어 방문을 꼭꼭 닫았습니다. 서로를 유령 취급하며 아이들과만 얘기를 나눴고 그 또한 상대방이 방에서 나오면 한쪽은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않은 우리는 가족인듯 가족아닌 가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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