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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Sep 19. 2022

4. 벌써 일년

브런치북_다시, 제주

일년후_딸에게 보내는 편지


그때 엄마는 필리핀이란 곳을 처음 다녀왔다. 

필리핀에서도 일년 중 가장 좋은 날씨라는 십일월의 한낮은 그럼에도 27,8도 사이를 오갔었지. 그늘없는 곳에서는 뜨거운 뙤약볕에 땀이 흘렀고 차 없이 걸어다니기에는 멀고도 힘겨운 길이었단다. 그 뙤약볕에 엄마와 아빠는 차도 없이 참 많이도 걸어다녔다. 너와 동생을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난 여행이었기에 짧은 시간안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지. 3일동안 3시간씩 자며 하루 두끼만 먹으며 강행군을 했더랬다. 

 

3박 4일간의 필리핀 출장 겸 답사를 마치고 한국에 도착했을 땐, 노오란 은행잎들이 거리에 우수수 떨어진 완연한 가을이었다. 뜨거운 나라에서의 먼지와 소음, 태양의 들뜬 분위기에서 벗어나 갑자기 차분한 북유럽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었지. 상대적으로 모든 것이 정적이었고 사람들은 더없이 차분했으며 날씨마저 비가 온뒤 느껴지는 청량감과 차가움으로 한국에 도착한 엄마는 잠시 달아올랐던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 느껴졌었다. 


필리핀으로의 이사가 결정되고 언제나 그랬듯 모든 것은 신속하게 이뤄졌었지. 필리핀에서 살 집은 이미 계약이 되었고 오자마자 부동산에 내놓은 한국의 아파트는 하루만에 계약이 되어버렸으니.. 이미 엄마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사와 관련한 그 모든 절차들을 마음 속에 차곡차곡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수능을 며칠 앞둔 어느날 더이상 미룰수 없어 우리의 필리핀행 계획을 얘기한 자리에서 너는 우리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이성을 잃었었다. 너는 엄마인 내게 모든 원망을 쏟아냈지. 두달동안 우리 모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채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며 그렇게 너와의 냉전을 치렀었다.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는 너도 나도 서운함이 너무 많았었다.  이미 우리는 서로가 준 상처로 인해 신음하느라 차분히 설명할 수도 이해를 구할 수도 없는 상태였던 듯 하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겨울을 알리는 건조함과 스산한 기운이 몰려오던 겨울이었고 그런 때에 한국에 혼자 남겨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너는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 

 

이사하던 날은 십이월치고는 그래도 따뜻한 날이었지. 다행히 걱정했던 비도 눈도 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낮게 깔린 잿빛 하늘이 불안하게 느껴졌던 하루였었다. 아파트 팔층을 오르내리는 사다리차를 보며 나이 사십 넘어서도 어디로 갈지 모르는 내 인생에 지독한 불안과 회의를 느끼면서도 이 불안감은 기우일 꺼라, 그동안 그 숱한 결정과 이사 때마다 밝기만 하고 좋기만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며 어차피 인생은 그런 거라며 엄마는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모든 짐을 두번 세번 꽁꽁 싸서 국제화물로 보내고 난 후, 텅빈 집은 공간감으로 작은 소리에도 메아리가 되어 울렸지.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텅빈 집에서 전기장판 하나를 깔고 우리 셋은 잠을 청했었다. 다음날 아침, 너가 잠시 머물 너의 친구집에 데려다 주고 네 동생과 돌아서던 길, 일년 후면 돌아올 거라며 시간은 금방 지나더라며 우리는 그전의 냉전을 종식시키는 작은 웃음을 지었었다. 


올 한해 너무도 정신없이 달려왔던 엄마에게 다시 이 맘때가 되자 지난날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하네. 의도했던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하나둘씩 스멀스멀 강바닥에 돌을 달아 던져두었던 기억의 무게가 그 끝이 풀려 두둥실 떠오르듯 말이야. 

"벌써 일년이구나."


그렇게 보냈던 지난 겨울, 두달동안을 필리핀 앙헬레스에서 보냈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도, 가고 싶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억이란 건 참 무서워서 다시 그때 즈음이 되니 그곳의 햇빛들, 소음들, 냄새들, 사람들이 생각난다. 무언가 어딘가 항상 들떠 있는 듯했던 그 곳.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곳의 기후 때문일 수도, 현지인들의 성향 때문일 수도, 도박과 여자 그에 따르는 부가적 사업과 잇권에 따른 인간의 바닥을 드러낸 민낯, 그 본능의 냄새 때문일 수도 있었겠다 싶다. 그곳은 그런 곳이었으니까.


다시 우리가 돌아와 시작해야 했던 시간들. 

추운 겨울을 지냈던 낯선 도시, 낯선 오피스텔, 낯선 7호선 지하 세계에서의 겨울. 

너는 대학 기숙사로, 네 동생은 큰이모네로, 그리고 아빠와 나는 지하철 김밥 매장과 그곳에서 멀지 않던 작은 오피스텔로 그렇게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었지. 지은지 오래된 광명의 오피스텔은 수시로 하수구 냄새가 올라와 자려 누우면 역한 냄새를 맡지 않을수 없었고, 밤만 되면 주변 모텔들 사이로 술취한 이들의 거친 언성이 얇은 창을 뚫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차마 네 동생을 낯선 그곳에 둘 수 없어 큰이모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고맙게도 이모와 이모부는 기꺼이 받아주었다. 엄마와 아빠는 주말 저녁이면 큰이모네로 갔고, 일요일이 지나 월요일 새벽이 되면 잠든 네 동생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이모네 집 현관문을 나왔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지하철 매장에서 김밥을 말았지. 좁은 오피스텔에선 음식을 할 상황도 아니었고 시간도 없었기에 우리의 끼니는 늘 매장의 김밥 또는 광명시장의 3000원짜리 짜장면이었다.  


그때 우린 참 막막했고 그만큼 단순하게 살아냈다. 눈 감으면 잠들고 눈 뜨면 가게로 나갔지. 당장 눈앞에 닥친 일밖에 할수 없었다. 더 앞을 내다볼 수도,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볼 수도 없는 시간들이었다. 과거를 기억할 필요도, 미래를 예견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래서는 안됐거든. 우리는 좀더 단순해져야 했으니까. 그것만이 우리가 살수 있는, 살아내야 하는 길이었던 것 같다. 그땐 그랬었다.


그 시간들이 짧았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동안 살아가느라 잊고 있던 그 기억들이 찬바람 부는 요즘 하나씩 떠오른다. 광명시장을 돌아 오피스텔로 돌아오던 밤거리에서 엄마 손을 꼭 잡아 한벌뿐인 겨울잠바 주머니에 넣어주던 아빠, 서글프게 올려다보던 하늘의 달, 떨어져 있는 너희들을 생각하며 짓던 눈물, 광명 오피스텔에 처음 들러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학교 기숙사로 가던 너의 슬픈 눈.


지난날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기숙사에서 나와 학교 앞 원룸에서 자취하는 너는 작년보다 좀더 행복해졌니? 

요즘은 핸드폰으로 참 다양한 선물템이 있더라. 편의점 기프트콘 보낸다. 

날이 춥다. 따뜻하게 입고 든든하게 먹자. 

편의점 음식 먹을 만하더라. 엄마도 요즘은 편의점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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