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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Sep 19. 2022

21. 제주살이와 해외살이의 공통점

브런치북_다시, 제주

아름다운 제주를 카메라에 솜씨좋게 담아내는 인친의 댓글을 보다 어느 분의 글을 봤습니다. 

'제주살이 처음에는 제주가 참 외국같다 생각했는데, 몇년 지나고 보니 외국이 제주같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제주살이가 매력적인 건 해외살이와 공통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공항에서 내려 마주하게 되는 야자수서부터 외국냄새가 물씬입니다. 이 다음엔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대다수의 여행객들은 공항에서부터 흥분한 표정이 됩니다. 이후로 펼쳐지는 해안도로 옆 파아란 하늘과 바다의 수평선, 해수욕장의 코발트빛 바다와 장엄한 한라산 정상을 보면 그 이국적인 느낌에 누구나 절로 감탄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제주에는 해외에서 살다 오신 분들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이민까진 아니더라도 이런 저런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고, 짧지만 강렬했던 그 경험들로 한국에 돌아와서도 육지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저보다 더 오래 미국이나 유럽,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살다 오신 분들이 선택한 곳이 제주이기도 합니다. 제주에 살다보면 그런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나게 되는데 아마도 제주의 자연뿐 아니라  생활방식과 기후, 문화 또한 외국과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대학때 갔던 유럽배낭여행 이후 여행을 좋아하게 된 저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힘들 때마다 여행지의 하늘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일부러 떠올리고자 해서 떠오른 게 아니라, 지금 발 딛고 있는 이 현실이 힘들다 싶으면 그냥 자연적으로 이국의 하늘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 아마도 그 마음이 그런 식으로 표현되었던 것 같습니다. 

첫번째 제주생활 이후 다시 육지로 돌아갔을 땐, 일상이 힘들때마다 외국의 하늘이 아닌 제주의 하늘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첫번째 입도때 했던 제주생활은 처음 해보는 식당운영이 힘들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다 큰 성인이 울기도 많이 울었고 술 마신 밤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혼자 밤하늘에 높이 뜬 달을 손가락질하며 욕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덫에 갇힌것 같았고 지난날 했던 회사생활에 비해 그 덫은 너무도 모질고 고통스럽게 육신을 갈아넣어야 하는 노동이었기에 많이 지쳤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곳임에도 떠난후에는 제주의 하늘이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을땐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잠시 떠났을 때도 생각나는 곳, 그곳이 마음의 고향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몇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시작한 제주생활은 그때의 시내가 아닌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지역입니다. 이곳에선 그야말로 한가한 전원생활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내가 있는 이곳이 해외인가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걸어선 갈 수 없는 아이의 학교를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오며, 아이가 끝난 시간에 맞춰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저와 같은 엄마들을 보면 '이곳이 미국이구나!' 싶습니다. 미국에서 잠시 살때 아이를 학교까지 라이딩해주고 픽업하는 일이 처음에는 참 낯설었습니다. 한국의 육지처럼 혼자 알아서 버스를 타고 오거나 걸어오면 좋겠건만 워낙 집과 학교의 거리가 멀다보니 당연히 통학은 스쿨버스나 부모가 해주는 일로 되어 있어 맞벌이 가정에는 커다란 부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제주에서도 매일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 제주의 시골 초등학교는 미국학교처럼 건물이 낮습니다. 잘해야 2층 정도로 건물보단 초록의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운동장이 있어 보기만해도 너무 예뻐서 저절로 미소가 솟아납니다. 그에 비해 강당은 본관만큼 크게 짓고 있는 추세라 운동회나 발표회를 할때는 전교생의 학부모까지 모두 참석하여 마을잔치를 합니다.


아이가 다니는 작고 예쁜 시골학교


날 좋은 날, 코에 바람이라도 넣으러 간 해수욕장의 선명한 코발트빛 물 색깔을 보면 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여기가 동남아구나!'

태국에서 본 바다, 필리핀에서 본 바다색이 이곳 한국에도 펼쳐져 있습니다. 이 예쁜 바다를 두고 뭐하러 비행기 타고 사람 많고 복잡하며 말도 통하지 않는 그곳까지 갔을까 어이가 없을 지경입니다. 오히려 이곳 제주에는 더 좋은 숙박시설과 맛있는 음식들이 있는데 말이죠.

한겨울에도 좀처럼 영하까진 떨어지지 않는 기온, 그럼에도 으슬으슬 떨려오는 뼈 시리는 한기.

육지처럼 뜨끈하게 보일러를 틀 수 없는 난방비의 폭격이 두려워 난로에 의지하는 이곳은 영국의 자취방을 생각나게 합니다. 좀처럼 해를 내어주지 않는 겨울의 흐린 날씨와 수시로 몰려드는 짙은 안개에서도 영국의 런던을 추억하곤 하지요. 

북쪽으로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기 전이면 제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이치는 비릿함을 품은 비 냄새와 코를 자극하는 축사 냄새에서 악몽과도 같았던 필리핀의 타운을 생각합니다. 커다란 부지 내 듬성듬성 들어선 집들 사이로 황폐하던 공터와 새로 건물을 올리던 회색빛 시멘트 담벼락들, 그 사이를 거닐다 바라보던 불타는 일몰. 부동산 사기로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타운 운영자와 분양자들의 분노를 떠올리며 당시에는 후진국의 한심한 현상으로 치부했던 그곳과 이곳의 완공되지 못한채 버려진 타운하우스의 공통점에 그저 사람사는 곳이라면 응당 벌어지는 다툼이었다 씁쓸해집니다. 

슬리퍼만 신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단지내 마트와 편의점 대신 차로 족히 20분은 가야하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때면 이국의 감성이 됩니다. 낮은 건물과 넓은 주차장, 주차장으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착각에 빠지곤 하지요. 

'내가 있는 이곳은 한국인가, 외국인가?'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좀처럼 외식을 하지 않는 우리 가족이었지만 오랜만에 짜장면이 너무도 먹고 싶었습니다. 명절 즈음이라, 쏟아지는 택배물량을 오전 중에 부랴부랴 실어보내고 녹초가 된 몸이었기에 밥하기도 싫었고 음식점까지 갈 기운도 없었습니다. 집까지 배달되는 짜장면을 찾아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지만, '제주에서 짜장면은 가서 먹는 것'이라는 동네사람의 대답만 들었습니다. 

그렇게도 좋아하는 곱창과 짜장면, 짬뽕, 해보지도 않던 베이킹까지 인터넷의 반조리 식품을 구입하여 쟁여놓고 생각날때마다 홈메이드로 해먹게 되는 곳, 유일한 낙이었던 '카페투어'도 어느 시점부턴 카페까지 가는 거리와 시간, 한잔의 커피값이 아까워 집에서 원두를 볶고 갈아 내려마시게 되는 이곳은 제주공화국입니다.


홈메이드 베이킹과 피크닉

자동차 없이는 한 시간에 두대가 될까말까한 버스를 타고 돌아돌아 하염없이 가야하는 장거리 이동지이며, 아이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는 날이면 아이를 태워주고 데릴러 가려는 엄마들의 차가 줄지어 마당으로 들어서는 풍경이 연출되는 곳입니다. 

분명 같은 한국사람으로 같은 한국말을 하고 있는 것일진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 같은 말을 쏟아내는 어르신들이 있는 곳, 가만 들어보면 불어 같기도 하고 태국어 같기도 한 참으로 이질적인 언어, 제주어가 있는 곳입니다. 

낮은 지붕에 얼기설기 지은 돌담을 따라 들어가면 작지만 아기자기한 구조의 방들과 작은 마당엔 저마다 다양한 꽃들을 정성들여 가꾸는 아름다운 곳. 제주의 집입니다. 

육지에선 만나기 힘든 낯선 바다 친구들_ 옥돔, 열기, 꼬지, 자리돔과 밭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보랏빛 채소들_콜라비, 비트, 적채까지 모두가 육지생활에선 낯선 풍경들입니다. 


해외생활을 오래 하고 오신 분들에게 이런 제주는 낯선 한국생활의 이질감을 완화시켜주는 완충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에서 이민자로 사셨던 분들 또는 해외생활을 꿈꾸던 분들, 한국에서 살기 위해 온 외국인들이 많습니다. 저는 서울에서보다 이곳 제주에서 더 많은 외국인들을 봅니다. 

오래전부터 해외생활을 꿈꿔왔고 캐나다와 호주에서 잠시 생활도 했던 어느 분은 다시 나가고 싶지 않느냐는 제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요? 전 여기가 좋은데요. 말 안통하는 외국보다 말 통하는 외국, 제주가 바로 그런 곳이잖아요. 굳이 외국 나갈 필요가 있을까요? 한국말 통하는 외국같은 이 곳, 전 제주에서 죽을때까지 살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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