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미래의 만남
얼마 전 TV에서 본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10년 전에 약속했던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는 모습이었다. 화면 속 그들은 어색해하면서도 반가워했고, 나는 괜히 뭉클해져서 리모컨을 놓고 끝까지 봤다.
요즘 사람들과 약속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카톡 읽고도 답 안 하는 게 일상이고, "바빠서 연락 못 했어"라는 변명이 너무 흔해져서 변명인지도 모르겠는 시대다. 그런데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품고 나타난 사람들을 보니, 뭔가 다른 차원의 이야기 같았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많은 걸 바꾼다. 연인이었던 사람과 헤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기도 한다. 꿈꿔왔던 일을 하게 되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몸도 마음도 달라진다. 그럼에도 약속이라는 건 그 변화 속에서 하나의 고정점 역할을 한다. 마치 "네가 아무리 변해도 여전히 너구나"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가끔 지하철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려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상대방이 늦으면 조금씩 불안해진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타나서 "미안해, 늦었어"라고 말하며 헐떡이는 순간, 이상하게도 모든 게 괜찮아진다. 기다림이 고마움으로 바뀌는 그 순간이 좋다.
약속은 완벽함에 관한 게 아니다. 정확한 시간에 나타나는 것보다는, 결국 나타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이 나를 기억했고, 나와의 약속을 소중하게 여겼다는 마음을 확인하는 일이니까.
화면 속에서 서로를 축하하던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결국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 내가 살아왔다는 걸 확인해 줄 누군가의 눈빛이 필요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눈빛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10년 후의 약속을 본 오늘, 나는 내일의 작은 약속을 적어본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부터 열고, 고마운 사람 몇 명에게 짧은 메시지라도 보내고, 나를 조금 더 좋아할 수 있는 일을 하나 더 해보겠다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와 같은 자리에서 서로의 시간을 나누며 웃을 수 있기를, 약속이 자주 깨지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약속을 믿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