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일하다가 외로움에 사무칠 때가 있다. 시끌벅적한 교육복지실에서 웃고 떠드는 아이들 소리를 듣고도 아무 감정도 못 느낄 때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해진다. 종종 교육복지실에 오는 아이들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데 외롭다는 신호이다. 요즘 빨간불이 켜졌다.
주어진 일을 묵묵히 감당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속내를 잘 내보이지 않는 성격 탓도 있겠지만 감정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여다보면 교육복지사라서 느끼는 외로움이 크다. 교육복지사라면 외로움은 피할 수 없다.
교육복지사는 사회복지 시설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와는 또 다른 근무 환경이다. 학교에서 일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사회복지사나 군대에서 일하는 군사회복지사처럼 2차 세팅에서 일한다라고 말한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데 비슷하지 않냐고 되묻겠지만 학교라는 집단이 가진 고유한 특성 때문에 사회복지 시설에서 일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학교라서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다.
"특별실은 유배지나 다름없어"
어느 날 특별실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별관에 있는 특별실은 유배지나 다름없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던 게 기억난다. 보통 교육복지실은 복도 끝에 있거나 상담실이나 도서관 같은 특별실이나 방과 후 교실이 모여있는 별관에 있다. 아이들이 자주 오가야 하는 교육복지실이 건물 4층, 맨 꼭대기에 있으면 교육복지사더러 일하지 말라는 소리 아닌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듯 본관과 떨어져 있는 만큼 선생님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공간이 주는 외로움을 무시 못한다.
교육복지사가 자신의 역량을 펼치느냐 못하느냐는 어떤 관리자를 만나느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복지사의 전문성은 교육복지사의 개인 역량보다 관리자의 마인드와 리더십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교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학교에 교육복지사나 학교사회복지사가 필요 없다고 여기면 전문성은 고사하고 학교에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모든 학교가 그렇지 않지만 교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직원 모임에 의도적으로 배재시키거나 예산 집행을 못하도록 권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교사나 행정 담당자가 해야 할 업무를 부당하게 맡기기도 한다. 관리자의 말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위계가 분명한 학교에서 교사가 아닌 신분으로 살아남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에 선생님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해요."
매년 선생님들에게 교육복지사의 역할을 이해시키고 존재감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더 외롭다. 교육자 역할이 주를 이루는 학교에서 가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듯하다.
잘못하다간 들이받겠다.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동료가 그리워진다. 교실 하나 크기 정도 되는 공간에서 혼자 일하기 때문에 가끔 적막함을 느낀다. 문제가 생기거나 일이 막히면 상의하거나 의견을 나눌 사람이 없다.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료 교육복지사에게 물어보지만 학교마다 일하는 사정이 달라 도움이 안 될 때가 있다. 거의 모든 업무를 혼자 처리하는 데 가끔 팀원들과 함께 일하는 사회복지사 시설이 부러울 때가 있다. 교육복지사는 동료가 고프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
일단 움직이자. 외로움이 짙은 우울감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만나라. 교사 모임에 적극 참여해 교사들과 관계를 맺어라. 방과 후 시간을 활용해 교사들과 소통하자. 개인 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아이들 문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도움을 주자. 그럼에도 모든 교사를 내편으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은 잊지 말자.
내편이 되어 줄 두세 명의 교사면 충분하다. 혼자 일한다는 생각이 줄어들 것이다. 선생님들도 아이들과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선생님들의 욕구를 서비스와 프로그램으로 연결하면 친해질 수 있다. 지난 근무지에서 아이들과 지리산 종주를 하고 싶어 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2박 3일 지리산 종주를 기획할 수 있었다. 선생님 덕에 매년 천왕봉에 오를 수 있었다. 지금도 연락하며 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일하면 좋은 점이 있다. 바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복지실 창가에 있는 바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바람에 흔들리는 벚나무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아이들이 기대는 등받이 쿠션에 몸을 맡긴 채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책꽂이에 꽂힌 그림책 제목을 따라 생각을 이어가기도 한다. 고독하면 고독할수록 나를 온전히 마주하게 되더라.
"나는 왜 이 일을 시작했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나는 충분히 잘 해내고 있어."
결국 외로움을 이겨내는 비법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18년의 유배 생활 동안 500여 권의 책을 서술했다고 한다. 500여 권의 집필은 고독한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외로웠기에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교육복지실에서 나를 온전히 마주하기에 교육복지사의 일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무치는 외로움은 또 다른 꿈을 꾸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