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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Oct 06. 2022

아이를 돌보는 일에 관하여

사례관리 일지

"오늘 다윤이 등교했나요?"

"아직 안 왔어요."


다윤이가 아직 등교하지 않았다.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쯤 스스로 등교할 수 있을까.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라 어쩌면 부모 도움 없이 등교하는 것이 욕심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 같아 답답했다. 하필 오늘 다윤이 문제로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회의하기로 했는데 이를 어쩌나.


다윤이는 방임으로 신고되어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사례 관리하는 아이다. 다윤이는 잦은 지각과 결석으로 학교생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제시간에 등교하지 않으니 학교생활이 안정적 일리 없다. 


어느 날 다윤이가 "왜 학교를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공부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고학년이 되니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가 버거운 모양이다. 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은 날이 점점 늘어나니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친한 친구가 있으면 좋겠지만 의지하고 마음 나눌 단 한 명의 친구도 없다. 어쩌면 다윤이에게 학교란 재미없고 지루하고 버겁고 자신 없는 곳일지 모른다. 


아이의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다윤이는 안정적인 양육 환경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불안하다. 부모의 따뜻한 격려와 무조건적인 지지가 없다 보니 학교에 가겠다는 동기나 계기가 부족하다. 친밀한 관계도 아니다. 하지만 부모는 다윤이가 정서적 욕구가 결핍되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등교 문제만 해결되기 바란다. 모든 문제를 아이 탓으로 떠넘기고 자신은 할 만큼 했다며 방관하는데 비협조적인 부모의 태도에 분하다. 다윤이를 바르게 이끌어 줄 보호자가 없다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무기력하게 지내는 다윤이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되고 또 고민된다. 다윤이는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하길 바라는 것일까. 다윤이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어떤 생각으로 학교에 안 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사실 해 줄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아 속앓이만 한다. 양육 환경이 바뀌지 않은 한 답이 없는 문제라 해결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


어쩌면 다윤이에게 학교는 고통 자체일지 모른다. 학교에 있는 것이 고통이라면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갈 생각만 해도 숨 막힐 것이다. 오히려 학교 생활이 불안과 스트레스를 키운다면 등교 거부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학교 가고 싶지 않다고 모든 학생이 등교 거부를 하는 것은 아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무언가를 배워야 성장하고 극복할 수 있을 텐데 걱정이다. 다윤이의 멈춰버린 시간을 어찌 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교 다니는 것이 즐거울 수 있을까. 다윤이에게 어떤 동기와 계기가 필요하다.


"아빠 도움 없이 학교에 와보는 것은 어때?"


김현주 저자 [무기력의 비밀] 책을 읽고 한 해 한 명 구하기 목표를 세웠다. 올해 불현듯 부모력을 키우는 것보다 아이의 자립력을 키우는 것이 훨씬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기 초 아이와 함께 "1교시 이전에 등교하기" 실천행동을 정했다.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부터 해보기로 했다. 다윤이가 등교하는 날이면 종례 후에 실천행동을 점검했다.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를 좋아하는 다윤이와 보석십자수와 캔버스페인팅을 하면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기분을 감정카드에서 찾아보고 날씨 스티커를 붙이며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아본다. 다윤이가 하는 말을 주로 들으며 공감해준다. 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나은 방향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말을 보탰다.   


"내일 보자."

자신 있게 약속하는 날이면 다윤이는 등교하지 않았다. 솔직히 기대한 만큼 실망도 컸다. 새끼손가락만 안 걸었을 뿐 다짐하며 약속했기 때문이다. 학교에 잘 나오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등교하지 않으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등교하지 않는 날을 예측할 수 없으니 애가 탔다. 등교하지 않은 날이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루 종일 생각하느라 일하지 못한다.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듣고 다윤이를 데리러 가정 방문을 했다. 다윤이네 집으로 걸어가는 3~4분 사이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 오늘은 왜 오지 않았을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또 노트북이나 TV를 보다가 학교 오는 것을 잊어버렸나. 아니면 월요일이라서? 비가 와서? 그냥 학교 오고 싶지 않았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나의 정성이 부족함을 자책하고 말았다.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걷다가 다윤이네 현관문에 다다랐다.


"띵동 띵동"

다윤이네 집 초인종을 눌렀다. 


"다윤아! 복지 샘이야, 학교 가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관문 너머에서 들리던 인기척이 멈췄다. 나도 모르게 현관문 가까이 귀를 대고 말았다. 숨죽여 들으니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생각보다 침묵이 길어졌다. 평소 같았으면 곧바로 문을 열어줬을 텐데. 오늘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다시 초인종을 누르며 다윤이를 불렀다. 


"다윤아! 복지 샘이야."

아파트 복도에 내 목소리만 크게 울렸다. 아무런 대답이 없이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분명 현관문 너머에 다윤이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복지 샘이야, 밖에서 기다릴 테니 준비되면 나와."


나름 다윤이에게 생각할 시간과 스스로 문을 열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이다. 기다리는 10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미동도 없는 현관문만 바라봤다. 기다리는 10분이 10년 같았다. 숨는 다윤이가 걱정되면서 한편으로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 다윤이 행동이 야속했다. 순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들킬까 봐 숨죽여 숨어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더는 초인종을 누를 수 없었다. 더는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 10분을 더 기다렸으면 다윤이가 문을 열어줬을까. 


다윤이는 현관문 너머에 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슨 이유로 숨었을까.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모르니 답답함만 커져간다. 아이들 돌본다는 것은 아이의 속도를 맞추는 일이라고 하는데 재촉한다고 느꼈을까. 아이를 돌보는 일에는 많은 인내심이 요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복잡한 사례일수록 심리학, 상담 이론, 상담 기법 같은 기술이 중요하지 않다. 마음의 문을 꽁꽁 닫은 아이들을 스스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도록 만드는 것은 1교시 이전에 등교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키는 일이다. 다시 관계를 쌓으며 시작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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