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는 엄마가 두 명이야
4살 아들의 마음 일기 [엄마 같은 존재]
엄마: 주로 어린아이들이 ‘어머니’를 이르는 말.
하염없이 기다리던 아들 뒷모습, 그리움이 묻다선생님도 엄마 같이 보는 마음
출근길,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아들과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네 살 아이와 이어지는 맥락 없는 대화. 말을 하다가 노래 부르고 노래 불렀다가 다시 이야기하고 그야말로 차 안은 정신없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어린이집에 도착한다. 도착할 무렵 아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유호야 오늘도 좋은 하루 되고, 재밌게 즐겁게 놀다 오면 좋겠어. 아들에게 응원하며 다짐을 받는다. 집에서 엄마 말 잘 듣지?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 순간 말을 뱉어놓고 네 살이 말 안 듣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 잔소리 같아 반복하지 않았다. 즐겁게 놀다 오면 좋겠다는 마음만 전달했다.
아들이 내 말을 유심히 듣고 나에게 하는 말,
선생님은 엄마야
맞아! 선생님은 엄마야.
아들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놀랐다.
아들에게 이렇게 까지 말한 적이 없었는데...
어린이집에서 교육시켰나 궁금하기까지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아들의 생각이 기특했다.
어린이집에 있을 때는 선생님이 엄마니까 선생님 말씀 잘 따라야 해!
맞아!(확신에 차듯) 아들의 대답에서 힘이 실렸다.
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 중에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길다. 반나절을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아들, 어쩌면 선생님을 엄마라고 여기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실제로 아들은 담임 선생님을 좋아한다. 어린이집이 교회 부속이다 보니 주일에도 원장님과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다. 성가대 연습하는 담임 선생님을 예배드리는 2층에서 "선생님! 선생님!" 목놓아 부른다. 아들을 볼 때면 네 살이 맞나 싶다. 선생님과 눈을 맞추기 위해 주변을 서성이는 아들은 마치 그리움 가득한 남자의 모습이다.
선생님을 엄마라고 여기는 아들이 고맙다. 아들의 말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네 살 때 보낸 첫 어린이집, 동생이 태어나 부랴부랴 보낸 터라 적응을 잘할지 걱정이었다. 실제로 아들은 2주 가까이 힘들어했다. 집이 어린이집과 멀어서 통학 버스로 등원하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출근길에 데려다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른 반 친구들보다 항상 일찍 도착했다. 아들의 불안을 키우는 환경이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면 아들은 힘든 환경에서도 적응을 했다. 아들은 담임 선생님과 함께 어려운 과정을 견뎠다.
두 엄마의 존재로 아이가 폭발 성장한 것 같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간 뒤로 부쩍 큰 느낌을 받는다. 친구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새로운 환경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자극은 오히려 아이를 성장시켰다. 솔직히 한창 어린이집 사고가 이슈일 때 아이를 보내서 걱정되고 불안했다. 어쨌든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게 된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엄마 같은 선생님들과 지내면서 무럭무럭 컸으면 좋겠다. 아들의 입에서 "선생님은 엄마야!"라는 말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엄마 같은 선생님을 계속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