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낮은 아이가 아빠다 되다

Mar 10. 2020

나는 자존감이 낮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 음악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리코더 수행평가가 있었다.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어찌나 긴장되던지. 침만 꼴깍꼴깍 삼켰다. “잘할 수 있을까.” 친구들의 시선이 부담됐고 주목받는 것이 불편했다. 틀리면 친구들이 비웃을 것 같았다. 주변을 의식할수록 바짝 긴장했고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생각하면 할수록 숨이 턱턱 막혔다. 결국 한 곡을 다 부르지 못하고 수행평가를 포기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진땀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시대를 잘 타고났다. 만약 그때 ADHD 검사를 받았다면, 단연코 ADHD 아이였다. 학교에서 산만하고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지 못했다. 뒷심이 부족했다. 시작하면 마무리하지 못했다. 자존심은 강해서 남들에게 지기 싫어했다. 그래서 보여주기식으로 공부했는지 모른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거나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진득하게 생각해서 풀지 못했다. 남몰래 답지를 들춰 봤다. 거짓꼴로 풀이를 베껴 썼다. 셀프 채점하면서 만족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사고뭉치였다. 말 짓을 하다가 담임 선생님에게 자주 혼났다. 도망가는 친구에게 돌을 던졌다가 학교 현관문 유리를 깼다. 친구들과 복도에서 축구를 하다가 복도 창문을 깨기도 했다. 여자 친구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쳤다. 오지랖도 넓어 골목대장을 자처했다. 문제는 약한 친구들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강해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누구보다 마음이 여린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눈치를 살폈다. 어른들의 말 잘 듣고 지나치게 의존적인 성향의 아이였다. 심리학적인 용어로 착한 아이다. 선택해야 할 때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결정권을 미뤘다. 회피하고 자기방어한 셈이다. 성인이 돼서도 우유부단한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 흔한 자장면 먹을지, 짬뽕 먹을지 메뉴 고르는 것도 친구들이 먼저 고르길 바랐다.

'아무거나’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는 식으로 친구들과 다른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양보라는 이름으로 나의 선택권을 포기한 것이다. 잘못되거나 나쁜 결과에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는 것이 두려워 선택을 미뤘다. 어쩌면 주변 눈치를 너무 살핀 탓에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자존감은 왜 중요할까. 자존감은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마음이다. 나를 판단하는 기준이자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존감에 따라 삶의 모습도 달라진다. 자존감은 타인과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지 않으면 쉽게 흔들리거나 휩쓸리고 만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다. 요즘처럼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대에 나를 지키고 사랑하는 강력한 기술인 것이다. 자존감은 살아가는 자양분이다.

자존감은 중요한 타인, 특히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부모의 인정과 칭찬, 사랑과 관심, 돌봄으로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든다. 미러링 효과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만들어진 긍정적인 자아상이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아이 키우면서 깨달았다. 부모의 자존감이 곧 아이의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부모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아빠가 아이의 자존감을 길러주자. 구근회 저자 [잘 되는 집은 아빠가 다르다] 책에서 "아빠, 엄마는 네가 우리의 아들(딸)로 태어나줘서 얼마나 행복하니 몰라." "아빠 생각에 너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유일하면서도 아주 특별한 사람이란다." "아빠 생각에는 네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너는 네 목표를 꼭 이룰 수 있을 거야." 아이에게 긍정적인 자아상을 심어주기 위해 소속감, 가치감, 자신감을 심어주라고 조언한다. 다시 말해 가족 일원으로서 자기 역할을 주고, 존재로서 의미 부여하고,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용기를 주는 일이다.

“가족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아이들에게 일상을 함께하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자.”

“노력하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린 시절 상처를 마주하지만, 되레 나를 더 이해하게 됐다. “아빠, 아빠”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안아달라고 두 팔 벌리고 목말 태워달라며 등에 매달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 케케묵은 상처가 아문다. 어쩌면 나의 아버지도 나의 어린 시절처럼 자신의 아버지를 원망하고 분노하며 억누르며 살았겠구나 싶다. 낮은 자존감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나 자신을 사랑하리.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아빠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