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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Q 06화

포옹

by Letter B





지나고 보면 매서운 추위였다.


허상을 이겨내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과신이 부른 결과인지도 모른다.

솎아내던 눈물도, 부질없는 책망도, 사그라든 신의를 돌이키는 일도,

말없이 바라보는 것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을 삭혔다.


이해와 오해, 그 어중간한 사이를 하루에도 수십번을 오가며 몇 가닥을 쓸어내고, 그 중 남은 몇 알을 고르어낸다. 한참이나 맑갛게 씻어낸다. 참으로 이렇다할 유동성이 없도록 정갈하게 정제된 것들을 숨죽여 솎아내고는 밑으로 다시금 메어 두었다. 삼켜둔 것들이 한 번에 분출되지 않도록.


지나고 보면 참으로 매서운 추위였다.


시끄러워지는 날이면 부러 덮어두고는, 상흔이 옅어지기를 기다린다. 그 모든 미뤄둔 언어들에 대하여 꼭 맞는 자물쇠를 찾을 때까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무심히 응시한다.


응시보다 낯선 직시를 발견할 때면 나는 또 얼마나 뒷걸음을 칠 것인가. 차마 물을 수 없는 문제지를 손에 들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옆으로 비껴선 시간들에 대하여, 생각만 해도 아찔해질 정도로 겁이 많았었다고 나는 결코 인정하지 못할 것 같다.


아집인가.


뒤엉키고 일그러진 모양새를 곱게 다리는 일을 홀로 몇 해를 거쳐 낸다. 추억이 공존하지 않는 한 영영 풀어내지 못할 답안지를 기어코 손에 쥐었을 때, 나는 언제나처럼 곧게 메여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서로를 보듬어주지 못한 건 색도 모양도 아니었다.


사전을 뒤지듯 찾아낸 언어는 하필이면 모두 사랑이었다.

한바탕 소란이 씻겨나간다.

겹겹이 드리워진 이야기를 얄궂다 응시한다.


이야기할수록 하이얘져 가는 시간들에 대하여

호호 입김을 담듯 두 손을 포개어 살포시 온기를 불어 넣어 본다.




잘못된 청춘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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